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8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조선에서 ‘김정은 열풍’이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신감 있고 개방적이며 국제적 지도자로서의 세련된 모습을 보여줘 남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김정은 정치지도력을 재평가하게 되었다”는 등의 찬양 글이 올라온다고 소개했다.
대남 선전매체답게 어불성설인 기사가 많지만 ‘김정은 열풍’은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 국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상회담 전에 김정은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 학생은 4.7%였는데 회담 후에는 48.3%로 1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또 김정은에 대한 학생들의 이미지도 ‘독재자, 핵, 잔혹함, 고도비만, 폭력적’ 등 부정적이었는데, 회담 이후엔 ‘솔직, 호탕, 유머 있는, 생각이 트인’ 등 긍정적 표현이 많았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별 다른 근거 없이 “김정은을 달리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차례 회담만 했을 뿐인데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형과 고모부를 살해한 잔인한 독재자로 한국을 ‘핵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던 인물 아닌가.
상황이 급변할수록 신중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이제 시작 단계인데, 김정은에 대한 잘못된 평가는 치명적 오판을 부를 수 있다. 북한은 아직 카드를 꺼내지도 않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8일 열린 북한과 중국의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은 “관련국들이 단계별로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조처를 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先) 핵폐기’를 주장하는 국제적 요구와는 다른, 과거의 입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더구나 북한 쪽 발표문에는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김정은이 회담장에 나온 것은 그가 ‘자신감 있고 개방적이어서’가 아니다. 국제적 제재로 체제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협상에서 이기기 어렵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백전불태(百戰不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