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아 기자 ]
“우린 남과 북 모두에 잊혀진 존재입니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이들을 잊으면 누가 앞으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유영복 씨(88·사진)는 8일 기자에게 “국군포로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다녔지만 정부도, 국회도 알아주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유씨는 17살 때 서울로 이사 와서 야간 중학교에 다녔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진 뒤 북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됐다가 탈출해 국군이 됐다. 하지만 1953년 강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북으로 끌려가 납과 아연 생산지로 유명한 함경남도 검덕광산에서 광산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깊이 1㎞ 지하까지 내려가 길이 10㎞가 넘는 갱도를 거쳐야 작업장이 나왔다”며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광산에서 먹고 자는 날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유씨는 2000년 7월 나이 일흔에 두만강을 건너 북에서 탈출했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국군포로 송환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을 보고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광산 노동 후유증으로 만성 폐·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는 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정부의 무관심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국군포로나 억류자들은 마치 언급돼선 안 되는 사람 같다는 울분이다.
2011년 자서전 《운명의 두날》을 펴내고, 2013년 귀환국군용사회를 조직한 유씨는 최근까지 국군포로의 실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가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그는 “이곳으로 탈북한 국군포로는 80여 명밖에 안 됐는데 그마저 이젠 29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북한을 탈출해 온 국군포로들은 비록 국가유공자 대접은 받고 있지만 북에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면서 늘 괴로워하며 쓰라린 마음을 안고 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엔 뭔가 달라지나 했지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며 지난달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에서도 국군 포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에 아쉬움을 전했다.
“북에서는 ‘불량분자’로 낙인찍히고, 한국에선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됐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포로들을 위해 추모비 하나 세워 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큰 욕심인가요.”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