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공사장 둘러보다
등산화 신은 현장소장 목격
품질 낮은 안전화 대신 애용
안전화 진출 3년만에 1위
2014년 K2세이프티 분리
안전용품 매출 지난해 850억
[ 김기만 기자 ]
K2코리아 창업자인 고(故) 정동남 사장은 1994년 서울의 한 공사장을 둘러보다 K2 등산화를 신은 현장소장을 발견했다. 그는 등산화를 건설현장에서 신고 있는 게 이상했다. 안전화를 놔두고 왜 비싼 등산화를 신고 있는지 궁금해 소장에게 물었다. 현장소장은 “안전화는 불편해서 신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시만 해도 산업현장의 안전의식이 낮았다. 안전화도 통가죽이라고 하지만 가격이 싸 부상을 막지 못했다. 공사현장에서 K2 등산화를 신을 수 있는 사람도 일반 근로자가 아니라 경제력이 있는 현장소장 정도였다. 정 전 사장은 회사로 돌아와 안전화 생산을 지시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K2가 안전화 시장에 진입한 계기였다.
3년 만에 시장 평정한 K2 안전화
이듬해인 1995년 안전화를 처음 내놨다.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선 데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등산화 브랜드로 자리잡은 K2의 인지도와 기술이 강점이 됐다. 1990년대 후반 시장점유율은 80%에 이르기도 했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짐과 동시에 시장도 성장했다. K2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14년 아웃도어 브랜드와 안전화를 생산하는 K2세이프티를 분리했다. K2세이프티는 안전화 안전벨트 마스크 등 5대 보호 품목을 중심으로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안전 용품 매출은 2014년 600억원에서 지난해 850억원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국내 안전화 시장 규모(출고가 기준)는 1500억원으로 추산된다. 경쟁 업체가 늘어나면서 K2안전화의 시장점유율은 40% 정도로 낮아졌지만 지난해 120만 켤레 정도를 팔았다. 손태근 K2세이프티 전무는 “안전화 매출로 보면 700억원 정도로 매년 20%가량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K2가 1995년부터 최근까지 산업현장에 공급한 안전화는 약 2억 켤레에 달한다.
미끄럼 방지 등 등산화 기술 활용
안전화 시장을 연 K2 창립자 정 전 사장은 경기 가평에서 서른 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두수선공으로 일했다. 직접 신발을 만들어보겠다며 1972년 K2를 창업했다. 대부분의 등산화가 수입품이었다. 정 전 사장은 수입 등산화가 한국인의 발 형태에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국산 등산화 개발을 시작했다. 국내 지형에 특화된 미끄러지지 않는 밑창을 만들었다. 등산화가 고급 신발로 취급되던 시기였다. 199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등산화 시장은 급성장하면서 K2는 국내 대표 등산화 브랜드로 올라섰다.
K2가 안전화 시장에서 빠르게 1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기술도 등산화에서 나왔다. 등산화 기술을 안전화에 접목했다. 1996년 국내 처음으로 ‘고어텍스 안전화’ ‘지퍼형 안전화’ 등을 내놓았다. 지퍼형 안전화 ‘K2-14’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800만 켤레 가까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2009년 방탄섬유 소재로 중창(겉창 속에 한 겹 덧댄 가죽)을 만들었다. 2010년에는 미끄럼 방지용 논슬립 안전화를 출시했다. 이 기술이 대부분 등산화에서 나왔다.
손태근 전무는 “신발업체는 의류 생산이 가능하지만 의류업체가 신발을 만들면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며 “신발은 기술력이 집약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K2는 20~30대 근로자를 위해 안전화에 다양한 등산화 디자인도 접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화인지 등산화인지 알 수 없는 제품을 내놨다. 일상복 차림에서도 신을 수 있는 디자인과 색상의 제품들이다.
안전화 종류도 용도에 맞게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벌목할 때 신는 임업화와 임시가설물(비계) 위에 올라가는 작업자를 위한 비계화 등 48가지나 된다. 건설현장과 조선소도 안전화가 필요한 대표적 사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등이 K2세이프티의 주요 고객사 중 하나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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