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이슈프리즘] 1969년, 삼성생명은 죄가 없다

입력 2018-05-07 17:52
수정 2018-05-08 06:45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1969년 1월 삼성전자를 설립한 것은 일종의 승부수였다. 1966년 8월, 이른바 ‘한국비료 밀수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2년여 만이었다. 그는 경영 복귀 카드로 전자산업 진출을 뽑아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산제품 전량을 수출하는 조건으로 복귀를 허락했다. 금성사(현 LG전자)가 장악하고 있던 내수시장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이 회장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 건설과 수출시장 개척에 모든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었다. 1967년 12월 현대자동차 창립, 1968년 2월 경부고속도로 착공, 4월에 포항제철 설립이 도미노식으로 이어졌다.

50년 전에 어떤 일이…

삼성전자의 초기 자본금은 3억3000만원. 당시로선 큰돈이었지만 종업원은 36명에 불과했다. 자본금 대부분은 수원 등에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일본에서 생산시설을 들여오는 데 썼다. 전자 부품사들도 속속 만들어졌다. 이 회장은 자본과 기술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일본 산요전기와 NEC를 합작사로 끌어들였다. 1970년 초 삼성산요(현 전기)와 삼성NEC(현 SDI)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을 열었다.

바로 그 시절에 삼성생명의 전신(前身)인 동방생명이 전자에 10% 안팎의 출자를 했다. 이 회장과 삼성물산도 여유 자금을 탈탈 털어 집어넣었다. 전자의 지배구조를 이루고 있는 핵심 뼈대가 이때 만들어졌다. 전자와 생명 모두에 당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수치는 알 길이 없지만 생명이 전자의 초대 주주사였던 점은 분명하다.

좌파 진영은 정권을 잡을 때마다 왜 생명이 아직도 전자 주식을 갖고 있느냐고 난리를 쳤다. 총수가 금융회사(생명)를 지렛대로 전자처럼 큰 기업을 지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몰아붙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참여연대가, 문재인 정부 들어선 여당과 정부가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 다를 뿐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처럼 오랜 관료생활을 통해 저간의 사정을 좀 알 것 같은 사람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도대체 다들 왜 이러나 싶다.

성공을 처벌하는 대한민국

생명이 보유 주식을 팔면 전자에 대한 경영권 방어가 어려울 줄 알면서도 그런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 같은 다른 길을 열어주지도 않는다. 그곳에도 의결권 규제 같은 함정을 곳곳에 파놓고 있다. 사실 좌파가 노리는 것은 따로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는 금산분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내심은 이건희 회장 일가를 삼성전자에서 몰아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멀쩡한 보험업법을 고쳐 가며 20조원이 넘는 전자 주식을 팔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1969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생명의 전자 투자는 가장 개혁적이고 선제적인 투자였다. 총수와 계열사들은 벌어들인 모든 돈을 전자사업에 쏟아부었다. 사업자금이 모자랄 때마다 사채를 끌어다 썼다. ‘천하의 이병철’도 어쩔 수 없었다. 금산분리 같은 용어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을 확인해봤다. 놀랍게도 221달러였다. 2210달러가 아니라 221달러!

말도 안 되게 못살던 시대에, 말도 안 되는 투자를 단행해,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 것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반세기 동행이었다. 정부와 권력이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를 이렇게 멋대로 헝클어도 되나. 막말로 주식 팔고 난 뒤 전자 주가가 더 올라가면 누가 책임질 건가. 그동안 변변히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