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개울 길을 따라 - 나태주(1945~ )

입력 2018-05-06 18:02
수정 2018-05-09 10:29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개울 길을 따라 - 나태주(1945~ )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고
개울물이 소리를 내고 있었고
꽃이 피어 있었고
꽃이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저게 누굴까?
몸을 돌렸을 때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선 얼굴

네가 너무 예뻤던 것이다
그만 눈이 부셨던 것이다

그 길에서 그날 너는
그냥 그대로 개울물이었고
꽃이었고 또 개울물과
꽃을 흔드는 바람결이었다.

시집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밥북) 中

산책하기 좋은 날입니다. 꽃빛이 길 따라 흐릅니다. 바람도 나비처럼 흘러 다닙니다. 아이와 함께 걷는 꽃길 너도나도 꽃향기에 잠깁니다. 그 순간 풍경은 낯선 얼굴이 되는 게지요. 봄이 바람결에 한 사람의 몸과 맘을 훑고 지나간 게지요. 뒤돌아보았을 땐, 지금껏 걸어온 길마저 말갛게 씻어 내린 듯 눈부시도록 예쁜 얼굴로 서 있겠고요.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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