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딜 막전막후] ADT캡스 인수 "韓 M&A 사상 가장 극적인 버저비터 터졌다"

입력 2018-05-04 17:30
수정 2018-05-04 17:33
인수전 초대받지 못한 SKT..맥쿼리 '트로이 목마'로
2.97조원..SKT는 체면, 칼라일은 실리 챙겨


≪이 기사는 05월04일(17:2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11월 초 ADT캡스의 대주주인 칼라일과 매각주관사 모건스탠리가 매각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투자안내서(티저레터)를 내보내자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들은 아연실색했다.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힌 SK텔레콤에는 티저레터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물의 기본적인 정보를 담은 티저레터는 인수후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인수합병(M&A) 초청장’이다. 3조원 규모의 M&A를 1순위 인수후보를 배제한 채 시작한 셈이다.

이는 세계 3대 사모펀드(PEF) 중 하나인 칼라일이 기획한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칼라일은 SK텔레콤이 어떤 형태로든 인수전에 들어올 것으로 확신했다. 통신업과 보안업의 시너지 효과가 명확해 보였기 때문이다. ‘초청장 배제’라는 예상외의 파격수는 상대방의 조바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SK텔레콤이 아니어도 인수후보는 얼마든지 있다’는 자신감의 표명이기도 했다.

M&A 경험이라면 SK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인수전 참여 여부를 묻는 IB업계 관계자들에게 ‘ADT캡스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 또한 매각 측의 기대를 낮추기 위한 신경전이었다. 이번 인수를 지휘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을 비롯해 유영상 전략기획부문장, 노종원 포트폴리오매니지먼트 실장 등 M&A 담당 임원들은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매각 작업의 진행 상황을 꼼꼼히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든지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기 위해서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2월 예비입찰에도, 지난 2월19일 본입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IB업계에서 ‘정말 아닌가 보다’ 하는 분위기가 굳어졌다. SK텔레콤이 의도한 대로였다.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한 영국계 PEF 운용사 CVC캐피털의 승리가 기정사실화됐다. 인수가격은 3조원을 크게 밑돌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SK텔레콤이 전격적으로 인수전에 참여한 건 본입찰 1주일이 지나도록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되지 않아 거래 무산 가능성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그사이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호주 맥쿼리 뒤에 전략적 투자자(SI)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실체 없는 소문일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SK텔레콤이 맥쿼리라는 ‘트로이의 목마’를 앞세워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인수전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셈이었다.

한 번 참여를 결정하자 SK텔레콤은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2주 만에 실사를 마무리했고 CVC가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수준의 인수가격과 조건을 제시했다. 1년 가까이 ADT캡스 인수를 준비한 CVC가 두어 차례 인수가격을 올렸지만 SK텔레콤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투자수익률(IRR)을 고려해야 하는 재무적 투자자(FI)와 사업 시너지 효과를 노린 SI와의 대결에서 SI가 승리했다.

처음 합의한 인수가격은 2조9990억원. 하지만 ‘3조원은 안된다’는 SK텔레콤의 주장에 결국 최종 인수가격은 2조9700억원으로 확정됐다. 대신 부채 인식방법 등 비가격요인을 감안하면 사실상 3조원이 넘는 가격이어서 칼라일은 실리를 챙겼다. IB업계 관계자는 “CVC의 승리로 막이 내리기 직전 경기장에 뛰어든 SK텔레콤이 한국 M&A 역사상 가장 극적인 버저비터(농구 경기 종료와 동시에 터지는 결승골)를 터뜨렸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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