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비 앞에 먼저 닿는 기상(氣象)의 하나가 바람이다. 바람은 그래서 비를 부르는 조짐이다. 바람과 비, 풍우(風雨)는 한자세계에서 새로 닥칠 변화, 나아가 일상의 안온함을 깨는 위기의 요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와 유사한 표현이 많다. 풍운(風雲), 풍상(風霜), 풍림(風霖)이 우선 눈에 띈다. 바람에 이는 물결을 적은 풍파(風波)와 풍랑(風浪)도 맥락이 같다. 풍설(風雪)은 겨울에 내리는 눈으로 비를 대신한 표현이다. 풍진(風塵)도 같은 흐름이다. 오래전에 유행한 가요의 “이 풍진 세상을…”이라는 가사에 등장하는 단어다. 바람 거세 먼지 휘날리는 세상살이다. 닥칠지 모를 변화와 위기에 늘 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다.
만성풍우(滿城風雨)라고 적는 성어가 있다. 요즘의 중국인들도 즐겨 사용하는 성어다. 원래는 가을에 닥친 비와 바람으로 어지러워진 상황을 읊은 서경(敍景)이었으나, 커다란 사건이나 사고 등으로 사회가 매우 큰 변화에 휩싸이는 경우를 가리키는 성어로 자리 잡았다.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어 곧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난다. 그로써 한반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의 기로에 놓일 공산이 크다. 북한이 비핵화의 큰 걸음을 떼면 우리는 6·25전쟁 이후 이어졌던 환경이 급변하는 소용돌이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우선 비가 많이 닥칠 듯하다. 그에 앞서 오는 바람도 거셀 모양이다. 북한이 선뜻 비핵화에 나서지 않고 꼼수로 나올 경우 닥칠 풍파(風波)도 만만치 않다. 그를 가라앉힐 역량이 부족하면 아주 센 폭풍(暴風)이 우리를 휩쓸지도 모른다.
바람과 비에 묻어 있는 변화의 요소를 잘 읽으면서 상황에 대비해야 할 때다. 한자가 만들어진 중국 대륙의 황하(黃河) 줄기 어디에는 물 흐름 중간에 기둥 모양으로 우뚝 선 砥柱(지주)가 있다. 강한 물 흐름에서 중간을 제대로 지키는 바위다.
‘중류지주(中流砥柱)’라는 성어는 예서 비롯했다. 거센 물의 흐름 중간에서 제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는 모습의 형용이다. 제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의 의연한 자세를 가리킨다. 격변의 와중(渦中)에 우리가 취할 태도라고 봐도 좋겠다.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