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닉 베이어 美 커피 전문점 '색스비' CEO

입력 2018-05-03 16:22
수정 2018-08-16 17:17
한 번 망해봐서 잘 안다
물건 팔듯 커피 팔면 안된다는 걸

대학생이 점장·매니저·바리스타…
누구에게나 열린 '커피계 핫스타'


[ 유승호 기자 ]
미국 커피 체인 색스비(saxbys)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닉 베이어는 2005년 들렀던 덴버의 한 커피숍을 잊지 못한다. 당시 베이어는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27세 청년이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숍에 자주 가지도 않았고, 커피를 즐겨 마시지도 않던 그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스타벅스 매장이 새로 생겼다. 소규모 커피 체인도 늘고 있었다. 베이어는 커피사업에서 성공 가능성을 봤다.

뼈아픈 실패

애틀랜타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54곳을 빠짐없이 다니면서 커피를 마셔보고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어떻게 서비스하는지 살펴봤다. 신용카드 대출로 15만달러를 마련해 프랜차이즈 커피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가맹점주를 모집했다.

색스비라는 브랜드 이름도 지었다. 미국 유명 백화점인 삭스피프스애비뉴와 스타벅스, 예술작품 경매회사인 소더비 등을 조합한 이름이었다. 베이어는 “발음이 독특하고 열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업은 생각만큼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가맹점 매출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꼬박꼬박 받기만 해도 쉽게 돈을 벌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가맹점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과 상품 개발, 마케팅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고 직원들에게 월급도 줘야 했다.

가맹점이 많아지면 수익성이 높아졌겠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2년 동안 15개 가맹점 신청을 받았지만 문을 연 곳은 6개뿐이었다. 점포 임차료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계약대로 매장을 열지 못하는 가맹점주가 많았다. 그 정도 가맹점으로는 직원 인건비를 감당하기도 벅찼다.

2009년 한국의 법정관리와 비슷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이었다. 베이어는 “어리석고 순진했다”며 “커피에 별로 애정도 없던 사람이 커피 체인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덜컥 사업을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고 반성했다.

처음 쓴 사업계획서

실패는 전환점이 됐다. 필라델피아의 엔젤투자자(창업 초기 기업 자금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베이어는 사업계획서부터 썼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조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의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물었다. 돌이켜보니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어떤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어는 “물건을 팔듯 커피를 팔면 되겠다고 생각한 오만함이 실패를 불렀다”며 “파산 경험은 브랜드를 재구축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매장 운영 방식도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직영 체제로 바꿨다.

엔젤투자자의 조언에 따라 근거지를 애틀랜타에서 필라델피아로 옮기면서 베이어는 새로운 비전을 세웠다.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자’는 것이었다. 대학 캠퍼스에 매장을 내는 것도 ‘고객과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 더 끈끈한 관계를 맺자’는 경영 방침에 따른 것이다. 색스비의 26개 매장 중 3분의 1이 대학 안에 있다.

캠퍼스 내 매장은 점장부터 매니저, 바리스타까지 모두 대학생이다. 색스비는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로부터 사업계획서를 받고 심사를 거쳐 점장을 선정한다. 점장과 수석매니저로 선발된 학생들은 10주 동안 색스비에서 경영 마케팅 회계 등을 교육받는다. 이후 학교로 돌아가 자신들과 함께 일할 직원 30여 명을 모집해 매장을 운영한다. 색스비 본사 직원들은 1주일에 세 번 매장을 방문해 점검하고 학생들은 매출 등 실적에 따라 보너스를 받는다. 베이어는 “캠퍼스 내 색스비에서 커피를 마시던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들은 스타벅스를 지나쳐 대학 때부터 가던 색스비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커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베이어는 색스비를 ‘커피 기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파산까지 경험한 그가 기업은 수익을 내야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다만 돈을 버는 것 이상의 가치를 사회에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베이어는 “위대한 커피를 만드는 기업은 많다. 세상은 또 하나의 위대한 커피를 만드는 기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색스비는 손님들이 준 팁을 모아 지역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비영리사업을 위한 기금 모금 행사도 연다. 색스비 직원 400여 명 중 절반 정도는 노숙자와 고교를 중퇴한 청년 등 한때 사회에서 뒤처졌던 사람들이다.

베이어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환대(hospitality)다. 친절한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색스비의 사명이라는 얘기다. 그는 늘 직원들에게 밝은 미소로 고객을 대하라고 강조한다. 이런 생각에 따라 베이어는 ‘ODD’라는 자신만의 직원 채용 기준을 갖고 있다. 사교적이고(outgoing), 꼼꼼하며(detail-oriented), 잘 훈련된(disciplined)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라테를 만드는 법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미소짓는 법은 가르칠 수 없다”는 말에 그의 인재관이 들어 있다.

베이어에게 커피란 무엇일까. 그는 “국적, 나이, 빈부,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것이 커피”라며 “커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색스비는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3000만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베이어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는 “회사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싶다”며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 이 회사를 세웠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