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
"헌법 정신에 배치" 논란 예고
시비 소지 많다고 뺀 교육부
일부 진보진영의 주장 대폭 반영
"헌법 영토조항과 충돌" 비판 일어
北 세습·인권문제는 통째 빠져
[ 김동윤/구은서 기자 ]
2020년부터 사용될 중·고교생의 검정 역사(한국사) 교과서를 만들 때 기준이 되는 집필기준 시안(試案)에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빠졌다. 한국의 현대 정치체제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민주주의’로 대체됐다. 집필기준 확정 과정에서 반발과 논란이 예상된다.
◆헌법과 정면충돌 우려
교육부는 2일 ‘2015년 개정교육과정 역사·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만든 시안은 향후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와 국민의견 수렴 등을 거쳐 오는 7월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국정 역사교과서가 작년 5월 폐기되면서 시안이 새로 마련됐다.
현행 교과서의 지침이 되고 있는 2009개정교육과정 집필기준에선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번 시안은 ‘남한과 북한에 각각 들어선 정부의 수립 과정과 체제적 특징을 비교한다’고만 쓰고 있다.
교육과정평가원 측은 “전문가 자문 결과 1948년 유엔결의에서 대한민국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됐으며,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를 명시하는 것은 시비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남한과 북한을 대등한 국가로 기술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3조와 정면충돌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일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교육도 변화해야겠지만 북한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건 헌법에 어긋나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2007개정교육과정 집필기준에서도 대한민국이 ‘유엔 결의에 따른 총선거를 통해 수립되고, 유엔에 의해 합법정부로 승인되었음을 강조한다’고만 표현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북한 세습·인권 관련 기술 통째로 사라져
시안은 또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체했다.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과 교과서에서 대부분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역대 역사과 교과서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혼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역시 논란을 부를 전망이다. 헌법은 전문에서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표현으로 한국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서술도 크게 달라졌다. 2009 집필기준의 경우 ‘세습 체제 및 경제정책의 실패, 국제적 고립에 따른 체제위기와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 등을 서술한다’고 적고 있다. 이번 시안에선 이런 언급이 통째로 사라졌다.
시안 발표에 앞서 올 1월 공청회 때 공개한 외부 연구진안에선 6·25 전쟁 서술 부분에서 ‘남침’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이번 시안에선 ‘남침’으로 명기됐다.
김동윤/구은서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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