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개방경제란 사실 간과하고
특정 시기 초점 맞춰 왜곡한 보고서
재벌 개혁 논리로 사용돼선 안돼"
허정 < 서강대 교수·경제학 >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기업집단을 중심으로 한 우리 경제의 자원배분 효율성 하락’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기업들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2011년 이후 국가 전체적으로 생산성이 저하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간단히 말해 대기업집단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경제주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보고서는 연구결과를 성급하게 해석하고 있다.
우선, 한 국가의 생산성 변화를 추정하는 방식을 알아보자. 국가의 생산성은 기업들의 생산성 변화를 추적해 보면 알 수 있다. 기업 중에는 창업에 성공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도 있고, 경쟁력이 떨어져 퇴출되는 기업도 있다. 오랫동안 살아남아 성장하는 기업도 있다.
그렇다면 국가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모든 기업의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경우, 둘째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로 자원이 집중되고 있는 경우, 마지막으로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이 창업하거나 반대로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 퇴출되는 경우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이후 한국 경제의 생산성 하락은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 자원이 집중되는 생산성 낮은 기업들이 대기업집단 소속이라는 주장이다.
왜 이 보고서에서는 기업을 대기업집단 소속과 그렇지 않은 독립기업 소속으로 구분했을까. 이 같은 구분은 한국이 매우 개방된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한국은 수출과 수입의 합이 국내총생산(GDP)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투자법인들이 현지에서 발생시키는 매출 규모 역시 GDP의 40% 이상이다.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의 기업활동조사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수출의 80%가 해외투자법인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에 의해 달성되고 있다.
필자가 수행한 몇 가지 연구에서도, 연도와 산업에 상관없이 기업군별 생산성은 항상 해외투자법인을 소유한 기업군, 수출기업군, 순수 국내기업군 순으로 나타났다. 해외 투자법인을 소유한 기업들은 해외 시장 진출과 관련한 각종 불확실성 및 정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높은 생산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많은 국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은 주로 수출과 해외 직접투자를 하는 글로벌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KDI 보고서를 글로벌 기업군과 순수한 국내기업군으로 나눠 다시 분석해 보자. 결론은 이렇게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1년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는 글로벌 기업군으로 자원이 집중된 상태에서 이들의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군으로 자원이 배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국민은 아마도 2011년 이후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수출시장에서 매우 고전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해외시장에서의 수요 요인으로 인해 수출기업들의 생산과 수출이 줄어든 시기가 2011년 이후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업에 집중된 자원이 순수 국내기업군에 비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글로벌 가치 사슬의 확대로 국내 수출기업들의 부가가치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2016년 이후 수출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앞으로 5년 이후 위 보고서와 같은 연구를 다시 한번 해보자. 2016~2020년에는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결론을 낼 것인가. 그러면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생산성 향상은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 덕분이라고 결론을 낼 것인가.
한 나라의 생산성에 대한 연구는 좀 더 다각적인 가설을 발굴하고 엄밀한 실증분석을 수행한 뒤, 그 결과의 해석에 대해 신중하고 종합적인 토론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못한 이번 KDI 보고서의 내용이 재벌 개혁의 경제논리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