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정부' 표현이 무색하게 치솟는 실업률
성장잠재력 확충에 힘쓰는 美 중앙은행처럼
韓銀도 정책목표에 '고용안정' 추가 검토해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근로자의 날’은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하기 전까지 1년 중 가장 기다렸던 날이다. 워킹맘이 아닌 엄마들에게는 평범한 일일 수도 있는 아이 학교 방문, 선생님 면담 등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몇 번이나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지만 요즘처럼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이고 대학이 취업 준비장으로 변한 현실에서는 그런 고민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은행이 고용 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한은 총재 발언이 왜 세간의 관심을 촉발했는지 이해가 된다. 물론 한은의 정책 상충과 신뢰성 훼손, 보유 정책 수단의 제약 등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았지만 녹록지 않은 고용 동향을 보면 고용 안정을 위한 역할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일자리 정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일자리 진작책의 결과가 참담하다. 지난 3월 실업률은 4.5%로 2001년 5.1%를 기록한 후 동월 기준 가장 높은 수치다. 125만7000명이나 되는 3월 실업자 수도 2000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실업자를 집계한 이후 동월 기준 최고치다. 무엇보다 11.6%에 달하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글로벌 경기 호전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국가의 청년 실업 문제가 빠르게 해소되고 있는 것에 반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동안 중앙은행의 기능은 위기 발생 땐 최종 대부자 기능이 부각되면 금융 안정 목적이 강조되다가, 금융시장 안정 땐 물가와 실물경기 안정이 강조되는 식으로 순환과정을 겪으며 진화해왔다. 현재 다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물가 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직접 경험하고 이론적으로 정립되면서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위기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거시건전성 정책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한은법 제1조에서도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장기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목표로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물가 안정 목표제의 이론적 배경이 된 필립스 곡선 가설도 도전을 심하게 받고 있고, 금융과 실물의 분리대응 원칙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비합리적인 투자 과열에 의한 주식·부동산 등 자산 거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금융회사의 급속한 신용팽창이 수반되는 신용 거품에는 통화정책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한은은 통화정책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금융위기로 인한 실물경제의 급격한 위축 때도 디플레이션 위험은 가시화되지 않았고, 실물경기의 뚜렷한 회복 때도 낮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과 호주가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을 중앙은행 설립 목적에 규정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을 참조해야 한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한국의 노동시장은 유연하지 않아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정책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명확한 고용 지표를 활용하기 어려운 점은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은 통화정책과 함께 경제 운영에 일조해야 하는 재정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중앙은행에 대한 기대를 반영해 한은법에 고용 안정 책무를 명시하고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사항에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 지원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2016년 여야 의원 공동으로 발의한 적이 있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연간 개념으로 1972~2011년 40번의 관측 횟수 중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기조가 모두 경기 역행적 운영을 한 시기는 호황기(27회)에는 18.5%(5회), 불황기(13회)에는 31%(4회)에 불과했다. 이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경기 여건을 잘 조합하려는 정책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더 확대하고 정부와의 보다 균형적인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서라도 한은의 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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