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북한산' 작가 민정기 화백
[ 김경갑 기자 ]
“정말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중요한 장소에 제 작품이 걸린다는데, 걱정부터 앞섰어요. 혹시 제 작품이 부족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큰 그림은 조명 등이 잘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 기능을 못 하는 법이거든요.”
지난 27일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집 로비에 자신의 그림 ‘북한산’이 설치돼 주목을 받은 민정기 화백(68·사진)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민 화백의 그림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 위원장이 “이것은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이냐”고 묻자 문 대통령이 “서양화인데 우리 동양적 기법으로 그린 것”이라고 답했다.
민 화백은 남북 정상회담 이틀 전에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자신의 그림이 평화의집에 걸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TV로 그림을 본 뒤 안심할 수 있었다”며 “전문가들이 상당히 신경써서 그림을 설치한 흔적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민 화백은 풍경과 인간의 삶의 터전을 인문학적 회화 형태로 풀어낸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1980년대 후반 자연의 건강함을 표방하는 ‘지리산수’란 새 장르를 개척했다. 지리적 탐색과 역사 정신에 현대적 화풍을 융합했다. 2007년 이중섭미술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그의 풍경화는 고지도, 주역, 풍수지리, 설화를 근거로 전통 한국화 준법들을 서양의 유화물감과 화필로 재구성한 독창적인 필법의 작품들이다.
“그림은 역사를 담아내야 하고, 묘한 신비로움이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공감해야 하고, 능통한 수완을 지녀야 명품이 됩니다.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고 탄생되는 것이죠. 그러니 지리와 역사, 문학적인 질감이 없으면 그림이 살아 움직이지 않아요.”
‘북한산’은 응봉능선에서 바라본 북한산 전체 풍경을 담았다. 사실 응봉 쪽에서는 앞봉우리에 가려 삼각산 주봉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산 전체를 답사하고 나면 그 뒤편에 주봉 존재가 있겠거니 짐작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여러 시점에서 본 일종의 진경산수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작가는 ‘북한산’이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점에 “정말 보람 이상의 것을 느낀다”며 “오늘을 만든 좋은 뜻들이 앞으로도 잘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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