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 이후
核실험장 '공개 폐쇄' 밝힌 김정은
北·美 회담 겨냥 '비핵화 의지' 강조
김정은 "불가침 약속 땐 왜 핵 가지고 어렵게 살겠나"
"기존 요구 재확인… 核보유국 강조한 것" 분석도
[ 조미현 기자 ]
청와대가 29일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은 북·미 정상회담을 겨냥해 고도로 계산된 발언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이 북한 북부 핵 실험장의 폐쇄를 공개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에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북한이 10년 전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고도 핵 개발을 고도화한 것으로 볼 때 성급한 기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정은 ‘깜짝’ 계획 밝혀
청와대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북부 핵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북부 핵실험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가리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내용이 판문점 선언에 담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 “예정돼 있던 합의가 아니었다”며 “회담 결과를 복기 후 (김정은이) 동의한 부분을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김정은이 돌발적으로 이 같은 계획을 내놨다고 설명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의 전략적인 발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김정은이 반드시 미국 정상과 한 테이블에 앉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 20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는 다음달 중 한·미 전문가와 언론을 초청해 폐쇄를 공개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대외적으로 비핵화 의지가 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강조했다는 관측이다.
◆풍계리 3, 4번 갱도 건재한 듯
풍계리 핵실험장이 낡아서 폐쇄가 의미 없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김정은은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시설보다 더 큰 2개의 갱도가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지난해 9월3일 6차 핵실험까지 이뤄진 곳이다. 이곳에는 핵폭발을 실험할 수 있는 갱도가 4개가 있다. 1번 갱도는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 때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6차 핵실험이 이뤄진 2번 갱도 역시 지반이 약해져 붕괴할 조짐이 있는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이 밝힌 2개의 갱도는 3, 4번 갱도인 것으로 추측된다.
한·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3번 갱도는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다. 4번 갱도는 북한이 6차 핵실험 이후 굴착한 시설로 완성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최근 풍계리 핵실험장의 2개 갱도에선 여전히 핵실험이 가능하다며 핵실험장을 ‘완전 가동이 가능한 상태’로 평가했다.
◆‘핵보유국’ 강조?
북한이 공개적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다면 비핵화를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축배’를 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년 전 영변 냉각탑 폭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2007년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을 발표하고 영변 원자로 가동일지를 제출하는 등 핵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였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자 북한은 2008년 한·미·일·중·러 등 6자 회담 참가국 취재진을 초대해 5㎿ 규모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공개적으로 폭파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녹화 중계됐다. 하지만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가 연기되자 불과 1년 만에 6자 회담 불참을 선언하고,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김정은이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말한 것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린다.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정상화 등 북한의 기존 요구를 재확인한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이란 사실을 강조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