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문화부 기자) 어렸을 때는 재롱에 마냥 귀엽던 손자, 손녀가 어느새 중학교로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미 훌쩍 자라버린 손자, 손녀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쓴 소설가 조정래는 고등학생인 손자와 논술을 주고 받으면서 소통했습니다. 간단해보이지만 쉽지 않은 ‘논술 대화법’을 한번 알아볼까요.
조 작가의 사설 활용 논술교육은 사실 군대에서 고생한 후 복학한 대학생 아들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세번째 대하소설 '한강'을 집필 중이었지만 아침마다 아들과의 사설 읽기에 시간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세 가지 신문 중 한 개의 사설을 고르고 사설 속 논조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는 두가지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 다음 사설을 한 문장씩 읽어나갑니다. 문장의 의미와 전개 방식을 설명하고 기승전결까지 짚어보면 3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아들에게는 과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읽은 사설을 노트에 베껴 쓰는 것입니다. 작가는 ‘열 번 읽어 해독되지 않는 문장이 없고 열 번 읽는 것보다 한번 필사하는 게 낫다’는 말을 아들에게도 전합니다.
교육의 효과를 확인한 작가는 지난 2015년 당시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손자들에게도 사설 스크랩을 선물하기로 결심합니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자신만의 시각과 안목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논술에 대한 개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리고 1년 간 신문을 오리고 풀칠해서 만든 스크랩북을 큰 손자에게 건넸습니다. 유난히 말 수가 적은 아이는 그 스크랩북을 가져간지 1년이 흐르고 난 후 “할아버지, 써요.”라고 말합니다. 할아버지와 논술 쓰기를 하자는 얘기였습니다.
게다가 먼저 써서 준다고까지 합니다. 한달 후 아이가 써온 글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원고지 25매 분량의 긴 길에 작가는 한번 놀랐고 고등학생답지 않은 논리정연함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글로만 보면 아이가 아니라 이미 성장한 어른이었습니다. 작가인 할아버지는 크게 손 볼 데가 없는 손자의 글을 꼼꼼히 퇴고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주제로 자신의 글을 써 손자의 논술에 답했습니다.
최근 해냄 출판사에서 나온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에 그 글들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손자의 글을 빨간펜으로 퇴고한 원고도 그대로 실었습니다. 역사교과서 얘기부터 시작해 기업의 사회적 기능,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 세계를 지배하는 역병을 극복할 방법 등에 대한 할아버지와 손자의 글이 나란히 자리했습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대학 입시뿐 아니라 대학 진학 이후, 회사 생활에서도 글쓰기, 특히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주장하는 글쓰기 능력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신문은 매일 나오니 기본 교재가 매일 제공되는 셈이니 꾸준한 교육이 가능합니다. 능률이 높고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사설 하나 읽고 얘기하는 것도 최소 30분에서 1시간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중고등학생 아들 딸이 있다면 일단 한번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끝) /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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