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 바이오헬스부 기자 freeu@hankyung.com
[ 임유 기자 ]
엑스레이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A사는 저출력 엑스레이 신제품 판매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다. 방사선을 이용하는 엑스레이 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기에 앞서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방사선 발생장치(RG) 생산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방사선 피폭으로부터 안전한지 여부를 평가하는 절차다. 생산시설 차폐 성능, 작업 방법과 시간 등이 평가 항목이다.
A사는 고출력의 제품 생산 허가를 받은 시설을 이미 갖추고 있었지만 제품이 다르다는 이유로 심사를 다시 받아야 했다. A사 관계자는 “불필요한 심사 절차를 만들어 놓은 데다 심사비도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규제는 또 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방사선 관련 제품을 취급하는 사업자는 방사선 동위원소 취급 일반면허자 등을 방사선 안전관리자로 선임해야 한다. 문제는 엑스레이 기기를 병원에 설치해 주는 용역업체도 방사선 안전관리자 의무고용 대상이라는 점이다. 자격증 소지자가 많지 않다 보니 인건비가 비싼 데다 구인조차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정작 필요한 규제는 엉망이다. 방사선 진단이 늘면서 환자들의 방사선 피폭량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관리 체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4년 전 환자의 누적 피폭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내용의 ‘환자 방사선 안전관리법’을 추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 “피폭량을 환자에게 알리는 게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논의를 중단했다.
그나마 독일처럼 환자의 피폭량을 측정하는 선량계를 장착해야 엑스레이 기기를 판매할 수 있게 한 제도를 지난해 마련했지만 여전히 말이 많다. 기존 제품은 그대로 두고 새로 나오는 제품에만 선량계 부착을 의무화한 탓이다. 이 때문에 국내서 사용되는 엑스레이 기기의 10% 정도에만 선량계가 달려 있다. 환자 피폭 관리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불필요한 규제에만 집착하고 국민 안전은 뒷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