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시장과 인재가 AI허브 성패를 가름한다

입력 2018-04-24 18:04
분권적 특성의 AI, 실리콘밸리와 허브 형성 달라
일본은 구글과 아마존의 테스트베드로 입지 굳혀
대학과 정부, 기업간 인재 전쟁 갈수록 치열해질 듯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4차 산업혁명 허브의 향방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글로벌 AI 공룡들은 인재가 있고 시장이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연구소를 세우고 클러스터를 꾸밀 채비를 하고 있다. 시장과 인재가 이들의 키워드다.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분야에서의 글로벌 테스트베드와 글로벌 허브는 수요와 시장이 좌우한다. 이전의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정보기술(IT) 클러스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IT 클러스터의 주역이던 대학은 이들과 협업하는 것보다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각국 정부도 과감히 나서고 있다.

구글은 지난 20일부터 자사 스피커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통해 일본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과자 등을 주문할 수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세븐일레븐이 직영하는 도쿄의 40군데 편의점에서 주문을 받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마존이 진출해 소비자 유통시장을 많이 넓혀 왔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만 1000만 명에 육박한다. 이제 구글도 본격적으로 참여할 모양새다. AI업계에 일본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직구(직접 구매) 체제와 배달망이 잘 돼 있으며 소비자들도 적극 호응한다. 일본이 각종 AI 제품의 테스트베드가 되고 있는 이유다.


미국 캘리포니아 도로는 그렇게 많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율주행자동차의 테스트베드다. 캘리포니아 교통국의 허가를 받은 자율주행 관련 기업만 52개다. 1년 전 도로 주행허가를 받은 기업은 30개에 불과했다. 1년 만에 무려 22개 기업이 늘어났다. 참여 기업도 자동차 기업은 물론 IT 기업과 자동차 부품업체, 전자부품 업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등 다양하다. 그만큼 캘리포니아에 자율주행차 연구인력과 수요가 몰려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자율주행 시험車 늘어

지금 4차 산업혁명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 과거의 IT 클러스터나 테스트베드와는 다른 양상이다. 대학과 연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리고 거기서 나온 스타트업이 창업해 산업 발전을 이끌던 실리콘밸리 모델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기업과 소비자가 연결된 네트워크 시대다. 기업들은 이름 있는 시장에서 자리잡아야 하는 그런 구조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성인 분산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IoT는 중국 선전과 싱가포르가 테스트베드다. 중국의 수많은 중간재 기업에서 나온 부품이 모여드는 곳이다. 많은 벤처가 이런 부품으로 물건을 만들고 IoT로 실험을 한다. 드론도 거기서 나왔다.

스위스는 블록체인의 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크립토밸리라고 할 만큼 블록체인 벤처들이 스위스에 몰려 있다. 분권화된 문화가 가상화폐, 블록체인의 속성과 맞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위스 정부의 장려책도 한몫한다. 이런 산업구조에선 집적화하고 클러스터화해서 얻는 이득은 그다지 크지 않다. 전문화하고 특수화한 영역에서 맞춤식으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델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베를린이나 이스라엘 텔아비브, 캐나다 몬트리올 등 최근 각광받고 있는 AI 허브도 마찬가지다.

유럽 대학, AI인재 확보에 비상

최근 모든 국가가 유치에 관심을 보이는 AI 연구소는 더욱 그렇다. 구글은 프랑스 파리까지 포함해 모두 7개의 AI 연구센터를 갖고 있다. 물론 연구거점마다 그 역할이 다르다. 철저한 시장 차별화다. 거점별 고객의 취향과 수요에 맞게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면 된다. 표준화된 제품이 없는 것도 AI의 특성이다. 원천기술은 본사에서 개발한다. 기업들이 연구자들을 현지에서 확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제학자 마리아노 마머티노는 3년간 영국에서 AI 관련 직업만 485%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AI 공룡들은 시장이 있고 인재가 있으면 몇 배의 월급을 주고서라도 인재를 확보한다. 생태계의 혁신에 인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대학과 정부와 기업 간 인재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영국 가디언지는 24일 유럽의 일부 AI 과학자와 기업가들이 유럽연합(EU)에 4쪽짜리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캐나다 과학자들도 이 서한에 서명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AI 공룡들이 연구자들을 빼내가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들 기업은 일반 교수 월급보다 많게는 5배 이상 월급을 주고 연구자를 채용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만 200명이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학교육이 실종되고 한 세대의 연구인력을 모두 잃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들은 이에 따라 전문지식이 소수 기업에만 집중되고 미국과 중국으로 몰린다고 경고하면서 대규모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CERN과 같은 EU 차원의 대형 AI 연구소를 차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크롱, AI허브 추진 선언

이들만이 아니다. 정부는 더욱 적극적이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3월 1억2500만 캐나다달러(약 1049억원)를 들여 토론토와 몬트리올 에드먼턴 등에 새로운 슈퍼 클러스터를 설립했다. 캐나다는 5년 내에 AI 연구인력 1000명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아예 2022년까지 AI 분야에 약 2조원을 투입해 AI 허브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수한 해외 AI 인력을 프랑스로 데려오기 위한 인센티브도 대폭 늘렸다. AI 관련 연구와 실험에 대해서도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했다. 그는 “신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고 이를 기술 거부에 대한 변명으로 삼는 프랑스식 사고방식을 수술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도 2015년 데이터 인력 확보를 위해 앨런 튜링 연구소를 세웠으며 독일도 ‘디지털 2025’ 전략을 통해 세계적 거점을 만들려 하고 있다.

AI공룡, 글로벌 벤처 적극 사들여

정작 IT의 대표적 클러스터인 실리콘밸리에는 창업 자금이 그다지 모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컨설팅 업체인 PwC와 CB인사이트 머니트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가 유치한 벤처 투자 건수는 613건으로 2014년 793건에 비해 29.3%나 줄어들었다. 투자액수도 2014년과 비슷했다.

자금 유치 증가율 면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심부와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지역에 뒤처진 것으로 집계됐다. 오히려 AI 공룡들이 글로벌 벤처를 장소와 관계없이 무작위로 사들이고 있다. 정부 지원도 물론 허브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실리콘밸리 모델의 이점이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허브 모델이 그려지고 있다. 지금이 그런 변화의 시점이다.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