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사회적 대화 복귀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시급 1만원부터 달성한 뒤 논의
식대·교통비는 임금 아닌 회사 비용
사회적 대화 복원됐지만…
새 대화기구 출범에 法개정 필요
4월이 골든타임…합의 안되면 탈퇴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탄력근로 필요 사업장 파악 우선
당장 확대 땐 장시간 근로로 회귀
[ 백승현/심은지 기자 ]
유례없이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으로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충격 완화를 위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의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시급 1만원 달성”을 주장하는 노동계가 “상여금 숙식비 수당 등이 포함되면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논란도 뜨겁다. 오는 7월부터 당장 300인 이상 사업장은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논의는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주요 노동 이슈가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노동계의 힘과 무관치 않다. 그 중심에는 국내 제1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김주영 위원장을 만나 노동 현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무려 20년 만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출범 후 3개월 동안 별로 진척된 내용이 없습니다. 23일에도 노사정 대표자 6인이 세 번째 모임을 열고 사회적 대화 합의를 시도할 예정이지만 합의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 민주노총도 그렇지만 한국노총도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양극화를 해소하고 같이 잘살자는 목표 아래 우선 서로를 믿고, 쉬운 것부터 합의하고, 이후 큰 선언을 하는 식의 3단계론도 제안했습니다. 대화 분위기는 많이 무르익은 것 같은데 썩 잘돼간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현재로선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에서는 줄곧 사회적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4월을 ‘골든타임’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지난 정부들이 노사정위원회를 정부 주도의 개혁을 밀어붙이는 도구로 이용했다면 이번에는 중앙단위 노사관계를 복원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뢰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하지만 모든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출발할 수는 없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고 신뢰를 쌓아가면서 기초를 다지는 게 중요합니다. 새 사회적 대화 기구가 출범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앞으로 남북한 정상회담, 지방선거, 국회 원구성 개편 등을 고려하면 4월에 반드시 처리돼야 합니다.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기대로) 목매고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달 중 합의되지 않으면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역대 최고 수준인 16.4% 올랐습니다. 기본급과 고정수당만으로 돼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혀 현장의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저임금 취지가 저임금을 해소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지난해 최저임금 협상 때 사용자 단체에서도 시급 7300원을 제시했습니다. 최종 결정금액(7530원)과의 차이는 230원입니다. 고작 230원 때문에 이 난항을 겪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입범위를 확대한다면 최저임금 인상 효과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힘들어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상여금 숙식비 등 산입범위 개편 논의는 필요 없다는 건가요.
“조심스럽긴 하지만 (힘들어하는) 그런 기업이 많다는 주장에는 계속 저임금을 조장하는 면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저임금 사업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산입범위 개편을 주장하는 쪽에선 식대 교통비 등도 포함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그 사업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을 비용입니다. 임금이 아니라 회사가 당연히 지급해야 할 비용이란 얘기죠. 식대 교통비를 지급하지 않으려면 회사가 구내식당 및 셔틀버스를 운영해야 하는 겁니다.”
▷노동계에서는 한국의 노사관계를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계 인사들이 국회, 정부 할 것 없이 주요 직책을 대거 차지했습니다. 지금은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아닌가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노동계 힘이 세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과거에 많이 기울어진 부분들을 바로잡아가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동계로 기울어진 노사관계라는 주장은) 이제 조금 균형을 맞춰나가려는데 너무 심하게 공격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달 실업급여 지출·신청이 사상 최고치였다는데, 노동시장이 얼마나 더 유연해져야 하는 건지 걱정이 큽니다. 이제는 사용자 측도 지금까지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이만큼 성장해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됩니다.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경영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임금이 줄어드는 근로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도 좋지만 저녁거리 살 돈이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이 되레 양극화를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2004년 주 5일제 도입 때도 많은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잘 정착되지 않았습니까. 초기엔 조금 반대하는 분들도 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임금이 많이 줄어드는 곳은 잔업·특근을 많이 시키는 사업장인데, 그런 곳에선 불만이 있을 수 있겠죠.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부 노동자의 임금이 줄겠지만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의 고용이 일어난다면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 방안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거론됩니다. 취업규칙에 따라 2주, 노사합의에 의해 3개월로 묶여 있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2015년 9월15일 노사정 대타협 때 이미 1개월, 6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특정 시기에) 주문물량이 많이 들어오는 기업, 특정 시기에 바쁜 사업장에서 강하게 얘기하는 부분입니다. (탄력근로 확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당장 전반적으로 도입했을 때는 (장시간 근로를 용인하게 하는 식으로) 왜곡될 부분이 있어 그런 사업장이 얼마나 되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노총 조합원이 크게 늘었습니다. 2004년 이후 10% 수준에 머물러 있던 조직률도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치우친 ‘그들만의 노조’라는 비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노총은 작년부터 비정규직과 하청, 미조직 근로자를 끌어안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노조 조직률이 낮은 것은) 노조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노조를 설립하면 사용자에게 찍히고, 벌이도 시원찮은데 따박따박 노조비는 내야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규직뿐만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의 첫 직장은 공기업이었다. 원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한국전력 대졸 공채에 응시해 입사했다. 1996년부터 전국전력노동조합 서부지부장을 맡아 노동운동에 발을 들였다. 2002년 전국전력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이후 내리 4선을 했다. 한국전력 자회사와 출자회사의 민영화 반대 투쟁을 주도했다.
2009년 한국노총 상임 부위원장을 맡은 이후 2011년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2년에는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초대 위원장에 당선됐고 이후에도 세 번 연속 선출됐다. 2017년 1월 이성경 고무산업노련 위원장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26대 위원장에 당선됐다. 노총 내에서 온건하고 겸손한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1년 경북 상주 출생 △상주 함창고, 원광대 전기공학과 졸업 △한국전력노조 서부지부장 △2002년 전국전력노조 위원장(4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인터뷰를 하고나서…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노동 현안에 대한 한국노총의 선명한 주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왜곡 전달될 것이란 게 한국노총 측 주장이었다. 결국 민감한 이슈에 대해 김 위원장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 응했다.
예상대로였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현장이 아우성치고 있다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노동자 삶의 질’을 강조하며 원칙에 대해선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새 정부 들어 노사관계가 지나치게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이제 조금 균형을 맞춰나가려는데 너무 심하게 공격하는 것”이라며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노동계 출신이 대거 정부 요직을 차지했음에도 아직도 노동계는 약자라는 인식이 분명했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와 관련해 유연한 입장을 보인 점은 의외였다. 전면적인 탄력근로제 확산은 불가하다면서도 특정 시기에 주문이 몰리는 사업장 현황을 파악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해주자는 뜻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끝내면서 노동시장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생각이 더 짙어졌다.
백승현/심은지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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