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美 뉴욕 高校 배정제도가 말해 주는 것

입력 2018-04-22 17:47
"서울시 내년 일반·자사高 동시 전형
여러 형태 학교 있는 미국을 연구
투명하고 효율적인 진학정책 펴야"

이석배 < 美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 >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외식하러 나가서 메뉴를 선택하는 것처럼 가벼운 선택이 있는가 하면, 자녀의 학교 선택처럼 중요한 문제도 있다. 교육이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면 개인에게는 진학 및 학교 지원이 평생 영향을 미칠 선택이므로, 모든 정보를 활용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서울교육청은 2019학년도부터 일반고와 자사고 등의 고입 전형을 동시에 실시할 예정이다. 교육청은 고교체제의 수직적 서열화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데 반해 일부에서는 자사고 등에 불합격한 학생들이 대거 재수를 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에서 교육 정책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또 자주 바뀌는 정책도 많지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도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육의 여러 측면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미국경제학회는 매년 40세 미만 경제학자 중 한 명에게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이란 상을 수여하는데, 젊은 경제학자에게 주는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다. 올해엔 파라그 파닥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지난 20일 수상했다. 미국경제학회의 수상 이유에 따르면 파닥 교수의 연구는 공립학교에서 학생을 배정하는 방법을 개선하는 데 공헌했고, 중·고등 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정책을 고안하는 데 이바지했다.

최근 미국 경제학계에서는 공립학교의 학생 배정을 시장 설계(market design)의 중요 응용 사례로 보고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한국처럼 미국도 일반 공립학교 외에 마그넷 스쿨, 차터 스쿨 등 다양한 학교 체제가 존재한다. 마그넷 스쿨은 과학·예술 등 특정 분야 학생을 선발하는 특수 공립학교이며, 차터 스쿨은 미국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학부모·교원·지역 단체들이 설립한 좀 더 독립적인 공립학교다.

차터 스쿨의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파닥 교수와 공저자들은 차터 스쿨 입학에 대한 무작위 추첨으로 차터 스쿨을 다닌 학생과 추첨에서 뽑히지 않아 차터 스쿨을 다니지 않은 학생의 학업 성적을 비교했다. 차터 스쿨 경쟁률이 높아 무작위 추첨으로 입학한 학생과 떨어진 학생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차터 스쿨 이후에 두 집단 간 차이가 있다면 그 원인은 차터 스쿨이라고 볼 수 있다는 자연 실험의 방법론에 따른 것이다. 보스턴 지역 차터 스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차터 스쿨이 학생의 성적을 올린 것으로 나왔다. 또 차터 스쿨이 대도시에 사는 소수 민족 학생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파닥 교수는 학교 선택권 없이 거주 지역에 따라 학교를 배정하는 제도와 교육청에서 학교와 협조해 학생 의사를 반영해 일괄 배정하는 제도의 차이를 분석했다. 뉴욕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잘 설계된 학생 배정 제도가 학생에게 선택권이 없는 제도보다 현저하게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서울시는 2010학년도부터 고교선택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1단계에서는 서울시 전역에서 2개 교를 선택할 수 있고, 2단계에서는 거주 지역 학교 중 2개 교를 선택할 수 있다. 2019학년도부터는 자사고 등의 전형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교육청의 2017학년도 배정 결과에 따르면 약 92.5%의 학생이 희망하는 학교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시 결과에서 유추해 보면 현재 제도가 연합고사 이후 거주지 기준으로 추첨 배정되던 1980~1995년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고, 자사고 등 다양한 학교가 있는 상황에서 학생 및 학부모의 선택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경우 이에 따른 효율성 증대 및 복지 증진의 여지는 여전히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된 정책 분석과 연구는 시급한 과제다.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이고, 투명하면서도 교육의 기회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고교 진학 정책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