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0달러 속 해밀턴… '흙수저'에서 美 초대 재무장관으로

입력 2018-04-19 18:48
알렉산더 해밀턴

론 처노 지음 / 서종민·김지연 옮김
21세기북스 / 1428쪽 / 6만원


[ 최종석 기자 ] 미국 달러 지폐 속 인물 중에서 역대 미국의 대통령이 아닌 사람은 10달러 지폐(사진) 속 알렉산더 해밀턴과 100달러 지폐 속 벤저민 프랭클린 단 두 명이다.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로 존경받고 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해밀턴의 업적과 삶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밀턴은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사상가이자 수완 좋은 집행자였다. 해밀턴은 제헌회의를 소집한 주요 인물이며 고전적인 헌법해설문 ‘연방주의자’를 집필한 주요 저자였다. 연방정부의 형태와 권력을 예견하고 역동적인 행정부와 독립적인 사법부의 틀을 만들었다.

그는 신생국가의 살림을 맡아 헌법적 원칙을 제안하고, 이를 제도적 현실로 바꿔 놨다. 예산제도, 장기채, 조세제도, 세관체제, 연안경비대 등 근대 국가 경영에 대한 설계자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노예제 폐지, 전문 군대, 중앙은행, 발전된 금융체계를 주장했다.

미국의 대표적 시사평론가 중 한 명이자 전기 작가인 론 처노는 《알렉산더 해밀턴》에서 그의 일대기를 조명한다. 2만2000쪽에 달하는 편지, 일기, 법적·사적인 문서 등 고증자료와 50여 편의 사설을 바탕으로 해밀턴의 일대기를 세밀하게 써내려갔다.

그는 1755년 카리브해의 네비스라는 작은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해밀턴은 방탕한 백인들과 성질 사나운 노예들이 한데 뒤섞인 열대의 ‘지옥 구덩이’에서 자라났다. 그에게 흑인의 피가 섞여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해밀턴의 첫 직장은 무역회사였다. 섬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를 수출하고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수입했다. 그는 이 직장 경험을 통해 당시 유럽 경제를 지배하던 중상주의 정책에 일찍 눈뜰 수 있었다. 계층 이동이 쉽지 않던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하류층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그는 뉴욕으로 유학갈 수 있었다.

뉴욕 킹스칼리지(지금의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하던 해밀턴은 공부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무렵 미국에선 독립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결국 학교 과정을 다 마치지 않고 독립군에 가담해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는 조지 워싱턴 장군을 만났다. 해밀턴은 워싱턴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 전쟁이 끝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1776년부터 1800년 사이, 그 누구보다 이곳저곳을 누볐다. 네 번의 대통령 선거를 움직이는 주요 세력이었고, 초대 워싱턴 행정부와 2대 애덤스 행정부의 정치적 의제를 대부분 이끌었다. 여러 주들이 강력한 연방정부를 따른다는 그의 사상은 영국 왕실이 보여준 방식으로 회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일으켜 많은 정적을 만들었다. 농업중심 사회를 고집한 사람들에게 은행, 공장, 증권거래소 등의 확장을 주창한 그의 사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결국 49세의 나이로 정적과의 결투에서 총에 맞아 숨진다. 무명의 이민자에서 자신을 스스로 재창조해 권력의 핵심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미국 국가 형성기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이 책에 영감을 받아 해밀턴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해밀턴’이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져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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