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사용법 따라 팔자가 바뀐다

입력 2018-04-19 18:07
이광훈의 家톡
(3) 멋진 창문, 때론 독이 된다



시골에 내려와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자주 망각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가’다. 처음 시골집을 구상할 때는 도시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반작용,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상실감으로 그 반대편에서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빠뜨리는 게 있다. 도시에서 가장 결핍을 느꼈던 것, 바로 햇볕과 바람이다. 건축 상담을 하다 보면 창문을 어디에 얼마나 크게 낼지 얘기할 때 햇볕과 바람을 얘기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은 전망을 얘기한다. 창문 프레임을 액자처럼 만들어서 밖을 보는 풍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게 주문하는 사람은 많다. 그 창문을 통해서 받는 햇볕과 바람은 안중에 없다.

간혹 햇볕을 얘기하는 사람도 봄날의 화사한 햇볕에만 취해서 여기저기 창문을 많이 내려고 한다. 햇볕은 계절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 햇살에는 딸을 내보낸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해는 겨울에 내려오고 여름에는 하늘 중앙으로 올라간다. 빛이 내리쬐는 각도가 다르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람을 통해 내보낼지를 잘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햇볕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사람의 팔자를 바꾸는 일이 되기도 한다.

봄날은 간다. 겨울과 여름에도 따뜻하고 시원한 창문을 달아야 좋은 집이다. 필자도 이걸 깨치는 데 10년이 넘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골은 햇볕에 관한 한 무한대의 선택이 열려 있다. 그것을 집에 담는 과정이 건축이다.

20년 전 처음 목조주택을 공부하러 미국 시애틀과 포틀랜드, 캐나다 밴쿠버 등을 자주 찾았다. 집들을 둘러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급 주택 중 서향이 유난히 많았다. 우리가 가장 기피하는 좌향이다. 그 비밀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면서 풀렸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움직임에 따라 경제가 돌아가는 미국에서는 모든 시계가 동쪽에 맞춰져 있다. 뉴욕과 3시간 시차가 나는 시애틀에서는 많은 직장인이 아침 6시에 출근하고 오후 3시면 퇴근한다. 뉴욕의 ‘나인 투 식스(9 to 6)’ 시스템에 맞추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햇볕을 쬘 여유가 없으니까 퇴근할 때 가장 햇볕이 좋은 방향으로 집을 앉혔다. 서향 집이 많은 게 당연했다. 햇볕 사용법이 건축에 잘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애틀 사람들이 그렇게 햇볕에 목마른 이유는 이곳의 기후 때문이다. 겨울이 우기, 여름이 건기로 겨우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곳도 있다. 얼마 전 해외 온라인 미디어에 ‘햇볕이 우리 몸에 미치는 놀라운 효능 8가지’라는 기사가 실려서 화제가 된 적도 있지만 햇볕의 놀라운 효능은 그것을 받아본 사람만이 안다.

햇볕이 쏟아지는 밝은 집에서 시 한 수 가슴에 품고 살면 모두가 가슴에 칼을 품고 살아가는 듯한 이 삭막한 세상이 그래도 좀 무디어지지 않을까.

이광훈 <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249402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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