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신화·대영제국의 일등공신은 '금융시스템'

입력 2018-04-19 15:58
수정 2018-04-19 16:40
한경 BIZ School

Let's Study - 금융 인사이트 (7) · 끝


요즘 세상의 관심척도는 네이버 검색 순위다. 그 순위에 상당 시간 증권사 이름이 올랐고, 안타깝게도 부정적 사건 때문이었다. 교환을 매개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번 잃은 신뢰를 복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신뢰가 생명인 금융회사에 이런 사건은 더욱 치명적이다. 날아간 화살은 증권제도 문제로 확대됐고,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우간다랑 비교됐다. 비금융인들은 금융인들을 도매금으로 질타했고, 금융인들은 풀 죽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금융인들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모두를 위해 금융을 제대로 평가하고 싶다.

지난 칼럼에서는 고장이 자주 날 수밖에 없는 금융시스템 문제를 다뤘다. 이번에는 금융시스템이 바꾼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금융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첫 번째는 우리나라 현대중공업 이야기다. 1970년대 정주영 회장은 500원짜리 화폐 속 거북선으로 차관을 이끌어냈고, 현대중공업은 현재 세계 2위의 조선사가 됐다. 광고로도 만들어진 이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하다. “당신이 배를 사주면, 영국 정부에서 차관을 얻어서 배를 만들어줄 테니까… 사라.” 많은 사람이 황량한 바닷가 사진을 보여주고 차관을 얻은 정 회장의 배포에 놀랐지만, 사실 그는 디테일에 강한 사업계획서의 달인이었다. 당시 사업계획서를 심사하던 은행 담당자가 물었다. “당신의 전공은 경영입니까, 공학입니까” 이에 정 회장은 “사업계획서가 전공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대화는 필자에게 이렇게 들린다. “당신의 전공은 영업입니까, 생산입니까” “제 전공은 금융이고, 대출 승인받기가 특기입니다”. 현대중공업의 초기 성공 배경에는 ‘차관’이라는 금융시스템이 있었다.

Finance의 어원은 ‘완성’

이렇듯이 금융은 꿈같은 일을 실제 비즈니스로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리는 금융을 ‘자금의 융통’으로 소극적으로 해석하지만, Finance의 어원은 FIN으로 이는 ‘종료하다’ ‘완성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정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했고, 금융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다음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던 18세기 영국 이야기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영국의 산업경쟁력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영국의 산업경쟁력은 수많은 기업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 기업가들의 축하파티에 제임스 와트가 초대됐다. 모든 기업가가 일어서서 와트에게 감사를 전했다. “와트, 당신의 증기기관 덕에 우리는 생산성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와트에 대한 영국인들의 존경심은 여전하다. 가장 단위가 큰 50파운드의 인물이 바로 제임스 와트다. 그는 화려한 대영제국을 건설한 일등공신인 것이다. 화폐에는 또 다른 한 명이 있다. 누구길래 와트와 함께 모델이 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와트에게 자금을 지원한 벤처캐피털리스트다. 그는 와트에게 자금을 공급하고, 특허를 연장시켜주고,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을 붙여줬다. 매슈 볼턴이란 금융인이 없었다면 제임스 와트도 없었을 것이고, 영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금융은 이렇게 세상을 바꿔왔다.

영국 화폐엔 금융인 얼굴도

미래에 금융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경제학 책은 성장의 3대 요소로 토지, 노동, 자본을 이야기한다. 2, 3차 산업혁명으로 여기에 기술이 추가되기도 했다. 농경사회는 토지와 노동이 결합해 경제를 성장시켰다. 제조업의 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됐고, 정보혁명인 3차 산업혁명기에는 자본과 기술이 더 중요해졌다. 세계는 새로운 지식과 문명이 연결되고 융합돼 제품과 서비스로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과 노동’은 ‘지식 혹은 아이디어’로 확대됐다. ‘자본’도 블록체인 시스템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신뢰자본’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리학에서 힘(F)=질량·가속도(ma)로 구성된다. 불확실성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질량의 크기가 힘을 만들어내지만,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가속도에 해당하는 스피드가 힘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물고기라도 빠르면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이기는 방법이 스피드라고 했으니 뛰어야 한다. 뛰기 위해서는 방향도 필요하고 협동도 필요하다. 자본과 지식이 함께 방향을 모색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이 있다. 이 정신의 방향 아래에서 창조의 엔진이 발휘된다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4차 산업혁명의 기회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엔진을 힘차게 돌리기 위해서는 자본의 ‘금융’과 기술·노동의 ‘실물’ 결합이 전제돼야 한다. 미래 지향의 금융과 동반자적 금융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최일 < 이안금융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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