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국제 연구진이 위협적인 로봇에 반응하는 쥐의 뇌 활동을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공포에 반응하는 뇌의 작동 메커니즘뿐 아니라 로봇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응하는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김진석 교수와 김은주 연구원, 가톨릭관동대 의학과 조제원 교수 연구진은 쥐가 위협적인 로봇을 만났을 때 뇌에서 공포를 관할하는 편도체와 전전두엽 변연전 영역이 공포를 마주한 단계별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 18일자에 발표했다.
사람은 물론 생쥐가 공포를 맞닥뜨렸을 때 뇌의 특정 영역 활동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은 이미 규명된 사실이다. 뇌의 여러 영역 중에서 주로 편도체와 전전두엽의 변연전 영역이 공포 반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실제 이들 부위의 뇌 신경세포 회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다.
연구진은 천적을 모방한 포식자 로봇을 맞닥뜨렸을 때 쥐의 뇌에서 공포를 담당하는 영역인 편도체와 변연전 영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봤다.
포식자 로봇은 김 교수가 2010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제안한 ‘생태학적 공포 모델’로, 실제 천적처럼 생긴 로봇을 활용해 실체적 위협에 대응하는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개발됐다. 이전에는 공포에 대한 뇌 반응을 보려면 전기 충격을 줘서 공포를 유발하는 모델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모델은 동물이 마치 얼음처럼 얼어붙는 제한적인 행동만 보여주기 때문에 뇌 회로 안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변화를 살펴보기 어려웠다. 반면 포식자 로봇은 쥐가 실제 자연에서 포식자를 만났을 때처럼 예상되는 위협과 실질적인 위험, 공포, 탈출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뇌 신경세포 반응을 단계별로 볼 수 있다. 신경세포 간에는 전기로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에 이를 관찰하면 특정 영역이 어떤 단계에서 활성화되는지 알 수 있다.
연구진은 먹이를 제한해 배고픈 쥐(원 몸무게의 85% 유지)가 먹이를 찾기 위해 안전한 보금자리를 떠나 매우 넓게 개방된 상자로 나가 먹이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공격해 오는 포식자 로봇을 직면하게 됐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반응을 측정했다. 굶긴 쥐의 편도체와 전전두엽 변연전 영역에 전기 신호를 읽어들이는 전극을 삽입하고 음식물을 찾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통로 맞은 편에는 레고로 만든 몸집이 큰 로봇을 서있게 했다. 이 로봇은 쥐가 음식물을 먹으러 가까이 가면 큰 소리와 불빛을 내면서 쥐를 위협하도록 설계됐다.
관찰 결과 쥐가 안전한 보금자리나 먹이를 찾기 위해 포식자 로봇이 있는 장소로 접근할 때에는 감각 자극의 집중력과 관련된 전전두엽의 변연전 영역이 편도체보다 먼저 활성화된다. 하지만 조금 후부터는 편도체도 함께 상호협력해서 위협과 위험을 감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 쥐가 포식자 로봇을 발견하고 즉각적인 위협으로 인지하면 이번에는 편도체가 짧지만 급격히 활성화되면서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때는 변연전 영역의 신경세포가 편도체보다 늦게 활성화되면서 직접적인 탈출 행동을 유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 영역이 위협에서 벗어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활성화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쥐가 멀리 있는 위협을 느꼈을 때는 전전두엽의 변연전영역과 편도체가 함께 활성화되고, 눈앞에 위험이 임박했을 때는 편도체가 폭발적으로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위협에서 벗어나면 공포감은 줄지만 전전두엽이 계속해서 위협에 대한 감시를 이어간다는 점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런 역동적인 균형이 깨질 때 불안과 병적 공포증,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다양한 정신병리학적 증상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일반적으로 특정 행동이나 증상과 관련된 부위를 규명하는 것보다는 그 부위들이 형성한 뇌 회로 내의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이 특정 행동이나 증상을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며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공포를 뇌가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는지 구체적인 역할을 밝힌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과 로봇 간에 일어날 문제를 연구하는데도 활용될 수 있다. 실생활에 보급된 로봇이 위협할 때 인간이 느낄 공포나 대응 행동을 분석하는데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쥐는 인간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천적을 피하는 방법을 습득하며 진화해 기본적인 조건은 다소 다르지만 향후 로봇과 인간의 교류가 잦아지면 인간의 학습된 본능이 뇌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진행됐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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