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착인가 묘수인가, 문-홍 단독회담의 '정치학'

입력 2018-04-18 20:31
수정 2018-04-19 09:37


(박동휘 정치부 기자) 요즘 자유한국당은 그야말로 전시 체제입니다. 탄핵 사태 이후 간만에 ‘전투력’이 최고치로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퇴,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의 청와대 단독회담, 더불어민주당원 댓글공작 의혹 등 일련의 상황 전개가 자당(自黨)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한국당 내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한국당 관계자는 “김기식 건은 정무위 소속 의원들 중심으로 진행된 국지전이었다면 김경수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가 연루된 댓글공작 건은 한국당이 가진 모든 화력을 퍼부어야 할 전면전”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당의 중진의원은 “댓글 부대를 민주당이 관리했느냐의 문제도 그렇고, 청와대가 드루킹이라 불리는 댓글 부대 대장의 청탁을 들었던 과정 등 청와대로선 일일히 밝히기 난감한 것들”이라며 “해명이 여의치 않으면 궁금증이 생기고, 궁금증이 생기면 의혹이 더 커지는 악순환의 덫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국회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의원들이 지역별로 순번을 정해 철야 농성을 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 보면 적들이 실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 탓에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는 인식이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궁금증이 하나 생깁니다. 청와대가 왜 홍 대표와의 단독회동을 자청했는 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그동안 청와대는 홍 대표를 ‘여럿 중 하나’로 취급하는 전략을 고수해왔습니다. 구태여 홍 대표의 위상을 높여 줄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겁니다.

청와대의 공식적인 설명은 오는 27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이날 회동의 대화 중 8할은 남북 관계에 집중됐습니다. 홍 대표도 국회로 귀환 후 중진들에게 단독회동의 성사 배경에 대해 비슷한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다만 ‘포인트’가 좀 다른데 홍 대표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야당의 협조를 얻는 게 좋겠다고 해서 청와대가 나를 부른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당 관계자들은 청와대의 패착이라고 분석하는 분위기입니다. 사분오열 직전의 한국당이 결집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청와대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당시 홍 대표는 ‘김기식 원장이 자진사퇴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홍 대표의 ‘느낌’은 적중했습니다. 청와대가 나서서 야당의 리더십을 회복시켜주고, 결집을 위한 재료까지 던져 준 꼴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다시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청와대가 이런 상황 전개를 예상도 못하고 단독회동을 추진했을까요?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이른바 ‘K·K(김기식과 김경수) 사태’보다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의 급변을 순조롭게 처리하는 데 더 무게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홍 대표를 청와대로 부른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통일이라는 의제는 다른 그 어떤 이슈들을 덮고도 남는다는 게 이런 분석의 근거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작업이 착착 진행 중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식입니다. 국민들 마음 속에 ‘정말 통일이 다가오나’라는 마음이 들 법한 상황입니다. 한국당 일각에서 “홍 대표가 단독회동에 응한 것이 오히려 심각한 패착이다”라는 말이 나오니 청와대의 셈법이 무엇이었는 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끝)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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