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포스코 구하고… 짐 싸는 권오준 회장

입력 2018-04-18 17:46
수정 2018-04-19 05:55
News+ 정권 바뀔 때마다 포스코 회장 교체

문 대통령 해외순방에 번번이 '왕따'
與, 외압 아니라며 펄쩍 뛰지만 이러면 누가 소신경영 하겠나

포스코 민영화 18년 됐는데…아직도 정권 눈치 봐야하는 CEO
"외부 입김 막을 수 있게 확실한 주인 찾아줘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열린 긴급이사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권 회장은 “100년 기업 포스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가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한 그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관련기사 A3, 4면

‘왜 그랬을까?’ 4년 임기 중 2년을 남긴 권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발표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사퇴 결심을 했느냐’가 아니라 ‘왜 지금에야 결단을 내렸을까’라는 궁금증이다. 어차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에서 선임된 회장들이 중도 하차한 ‘관례’가 있는데….

벌써 여덟 번째다. 포스코 수장(首長)이 임기를 못 채우고 도중에 물러난 게 말이다. 정권교체와 맞물린 포스코의 수난사는 고(故) 박태준 초대 회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92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와의 갈등 끝에 회장직에서 사임했다. 질긴 악연의 시작이었다. 2대 황경노 회장과 3대 정명식 회장도 김영삼 정부에서 ‘코드’가 맞지 않아 차례로 물러났다. 이후 김만제(김대중 정부) 유상부(노무현 정부) 이구택(이명박 정부) 정준양(박근혜 정부) 회장이 모두 정권이 바뀌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세계 5위 철강업체인 포스코는 지난해 6년 만에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다. 영업이익이 4조6218억원으로 전년(2조8443억원)보다 62.5% 급증했다. 매출은 2014년 이후 3년 만에 60조원대로 올라섰다. 포스코 주가는 최근 2년여 동안 두 배로 뛰었다.

수년간 혹독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포스코는 지난달 31일 창립 50주년 행사를 열었다. 권 회장은 당시만 해도 회장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권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CEO 교체설과 관련해 “정도에 입각해 경영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경영성과나 회사 내부적 요인만 보면 CEO가 ‘낙마’할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 정치권의 사퇴 압력 등 ‘외압’을 의심하게 하는 이유다. 여권 관계자는 “민간 기업 인사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권 회장의 사퇴 결정도 (사전에) 몰랐다”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권오준 회장을 둘러싼 부정적 기류는 오래전부터 감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지로 네 차례 해외 순방을 나서는 동안 권 회장은 경제사절단에서 매번 제외됐다.

포스코가 미르·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내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압박으로 펜싱팀 창단을 검토하는 등 국정농단 주범 최순실 씨에게 부역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한 시민단체는 지난해 12월 최씨와 권 회장 등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포스코가 추진한 자원개발사업에 이명박 정부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권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민간 금융회사 회장 연임 등이 금융개혁을 가로막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정부이기에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권 회장의 사퇴 결정으로 주목받는 또 한 사람은 황창규 KT 회장이다. 황 회장은 권 회장의 사퇴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7일 정치자금법 위반(쪼개기 후원금) 혐의 등으로 경찰에 소환돼 20시간가량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포스코와 KT는 정부 통제를 받던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됐다. 민영화된 지 각각 18년, 16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부(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포스코와 KT의 외국인 지분율은 57%, 49%에 달하지만 모두 소액주주로 지배주주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국내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이 두 회사 지분을 각각 11.08%, 10.95% 보유한 최대주주다. 외국인 지분이 많은 글로벌 기업처럼 보이지만 정권 입맛에 따라 휘둘리기 쉬운 취약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경제계에서는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식이면 소신과 능력 있는 인사 중 누가 포스코와 KT의 수장을 맡으려 하겠냐는 것이다. ‘주인 없는 회사의 불행’을 막으려면 외부 입김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유상증자 등을 통해 확실한 주인(대주주)을 찾아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그렇지 못할 바엔 정권과 포스코, KT CEO의 임기를 맞추는 게 낫지 않을까.

이건호 산업부장 leek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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