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100여 년 전 플라스틱이 개발됐을 때 과학자들은 ‘만능 소재’라며 환호했다.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은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항공기 같은 첨단제품에도 쓰인다. 그러나 썩지 않는 특질 때문에 ‘쓰레기 대란의 주범’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재활용품 수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 영국 연구팀이 ‘플라스틱을 먹는 변종 효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플라스틱을 잘게 부수는 정도가 아니라 원료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일본 해안도시의 플라스틱병 침전물에서 찾아낸 박테리아에 강한 빛을 쐬는 실험 중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이 효소를 활용하면 원제품과 거의 똑같은 투명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플라스틱 원료인 석유를 아끼고 쓰레기까지 줄일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지난해에는 꿀벌부채명나방(벌집나방)과 그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빠르게 분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2015년에는 애벌레가 플라스틱 원료로 만든 스티로폼까지 먹어치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미국 공동연구진에 따르면 갈색거저리라는 곤충의 애벌레 ‘밀웜’은 소화기관에 있는 슈퍼 박테리아로 플라스틱을 분해해 유기물질로 바꾸고 나머지는 이산화탄소로 배출한다. 이 연구는 각국의 상용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업벤처도 밀웜을 통한 분해 기술을 연구하고 있지만 대량 분해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은 쓰레기 매립지에서 플라스틱을 파괴하는 누룩곰팡이를 찾아내 이를 활용한 ‘균류정화법’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는 모두 시작에 불과하다. 산업 현장에 활용하려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현재로서는 재활용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페트병은 전 세계에서 분당 100만 개꼴로 팔리지만 재활용률은 14%에 불과하다. 유럽에서는 폐(廢)플라스틱을 활용해 옷과 신발은 물론 벽돌까지도 제작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고체형 연료로 재활용하거나 소각할 때의 열로 발전기를 돌리기도 한다. 연소 중 발생하는 매연은 첨단 필터 설비로 해결한다. 이런 고형 연료를 ‘바이오 연료’로 구분해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폐플라스틱 입자를 3D 프린터 잉크로 재활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우리 정부도 학계와 지방자치단체,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과 대체물질 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며 고형 연료 생산 자체를 규제하는 근시안적 접근도 벗어나야 한다. ‘플라스틱 먹는 효소’ 개발은커녕 재활용 기술을 키우는 업사이클(업그레이드·upgrade + 재활용·recycle)까지 막는 게 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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