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전문委 '반도체 공정 공개 불가' 만장일치 결정
산업부 "D램·낸드플래시 등 핵심기술 7개 중 6개 포함
반도체 세밀한 공정 기술 전부 유출할 수 있는 수준"
"영업기밀 없다"던 고용부, 유족에게만 보고서 공개 등 고심
[ 조재길/심은지/성수영 기자 ]
“6개월마다 작성해야 하는 기업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 이렇게 상세한 핵심기술이 담겨 있을 줄은 전혀 몰랐네요.”
지난 17일 오후 4시30분 서울 서초동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사무실. 전날에 이어 삼성전자 환경보고서를 검토하기 위해 다시 모인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반도체전문위원들은 하나같이 놀라워했다. 반도체전문위원회는 산업부의 12개 분과 중 하나로, 공학교수와 연구원, 국가정보원 직원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이날 회의에는 13명이 참석했으나 2명이 “삼성전자가 소속된 협회와 관련돼 있다”며 스스로 제척 사유를 제출해 11명이 심의했다. 전문위는 3시간15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화성·평택·기흥·온양사업장의 작업환경 보고서에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만장일치로 판정했다.
“직업환경보고서 아닌 기술보고서”
산업부 관계자는 18일 브리핑에서 “전문위원들은 모두 반도체 분야의 전문가인데 하나같이 깜짝 놀라더라”고 전했다. 중국 등 경쟁국 업체가 이 보고서를 입수할 경우 압도적 세계 1위인 국내 반도체 기술을 쉽게 흉내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고 했다. 보고서에 적혀 있는 공정명과 공정 배치도, 화학물질 및 상품명, 월별 사용량 등만 봐도 핵심기술을 유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보고서를 통해 30나노(㎚) 이하급 D램과 낸드플래시 설계·공정·소자기술 등 반도체 핵심기술 7개 중 6개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위원들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중국으로 넘어가면 ‘그냥 드십시오’ 하고 기술을 통째로 바치는 꼴”이라고 지적한 위원도 있었다고 한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익명을 전제로 “반도체의 꽃은 공정기술인데 이걸로 수율(웨이퍼 내 정상 칩의 비율로, 불량률의 반대말)과 생산성이 결정된다”며 “작업환경 보고서를 보니 세밀한 공정기술을 전부 유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위원은 “공정 최적화만 해도 수만 가지에 달하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며 “보고서 내 정보를 조합하면 삼성전자가 수십 년 공들여 최적화한 노하우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가 제3자에게 공개될 경우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게 공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며 “전문위원들이 합당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일단 “끝까지 해봐야”
‘삼성전자 보고서가 국가 핵심기술을 담고 있다’는 판단이 나오자 고용노동부는 적잖이 당황해하고 있다. 정보 공개를 밀어붙이자니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을 정부 부처가 주도하는 모양새가 돼서다. 고용부는 이날 내부 회의를 거듭했으나 이렇다 할 입장 정리를 하지 못했다. 한국산업보건학회 소속 교수(의사)들의 판단에 따라 “삼성전자 보고서에 핵심기술이 없다”고 했던 터여서 더욱 머쓱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업부 관계자는 “근로자 건강만 알고 기술을 전혀 모르는 의사들이 국가 핵심기술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고용부가 이를 근거로 정보공개를 밀어붙였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내부에선 ‘물러설 수 없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고용부 고위관계자는 “우리 부처가 당초 정보공개를 결정한 목적을 감안할 때 산업부와는 기본적으로 입장 차이가 있다”며 “노동자의 생명권 보호장치가 꼭 필요한 만큼 행정소송에서 다툴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만 “보고서에 국가 핵심기술이 담겼다고 하니 제도적인 보완책은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고용부가 소송 추이를 지켜보되 결국 유족에게만 보고서 내용을 공개하는 식의 ‘출구전략’을 택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1~2개월 안에 보고서의 제3자 공개에 대해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제기한 정보공개 취소소송 역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행정소송은 3심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게 일반적이다.
조재길/심은지/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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