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에 ‘더 큰 칼’을 주겠다는 입법안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최근 발의된 금융실명법 개정안(이학영 의원)은 금감원의 행정처분권을 확대하고,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박용진 의원)은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이대로라면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권한까지 흡수하고 압수수색, 출국금지 조치도 가능한 더 강력한 ‘금융경찰’이 될 판이다. 가뜩이나 간섭·규제 위주인 금융산업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 ‘면허산업’인 금융은 두 가지 상반된 특성이 있다. 부실화할 경우 경제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큰 만큼 적정 수준의 감시와 감독은 불가피하다. 동시에 금융은 여타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적재적소에 공급하고, 자체 성장을 통해 부가가치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런 특성이 조화를 이룰 때 금융산업의 건강하고 혁신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정책은 ‘서릿발 규제’ 일변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금융을 업그레이드하기보다는 공공성을 명분으로 감시·감독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초 내놓은 ‘금융혁신 추진 방안’에는 지배구조 규제 강화, 금융그룹 통합감독, 최고금리 인하, 카드수수료 경감 등이 망라돼 있다. CEO 선임에 간섭하고, 노조에 사외이사 추천권을 주는 게 과연 금융혁신인지 의문이다. 말로는 핀테크를 키운다면서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규제는 온존시키는 등 퇴행적 행보마저 엿보인다.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 금융허브’처럼 과거에는 청사진이나 슬로건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금융의 비전조차 실종된 상태다. 오히려 ‘적폐’이자 ‘개혁 저항세력’으로 보고 틀어막고 금지하겠다는 금융정책이 홍수다. 금감원의 권한 강화 입법안 역시 금감원을 ‘잘 드는 칼’로 만들어 대기업과 금융회사를 손보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스포츠가 재미있으려면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고, 심판은 반칙에 엄격하되 경기흐름을 끊지 않아야 한다. 금융회사가 선수이고 정부 금융감독은 곧 심판 역할이다. 우간다 수준이라는 한국 금융산업을 키우고 활성화해도 모자랄 판에, 심판이 수시로 호각을 불어대면 미래는 암울하다. 그러면서 금융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