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R&D야말로 '실패 경진대회' 도입해 보라

입력 2018-04-15 18:11
“실패는 ‘혁신의 기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대신 활용하는 문화를 만들자.” SK하이닉스가 연구개발(R&D)의 실패가 있더라도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포상을 하는 ‘실패 경진대회’를 열었다. 약 250건의 실패사례가 공모전에 등록됐고, 이 중 우수사례 4건이 상을 받았다고 한다. 선진적인 R&D 문화를 만들겠다는 이 회사의 파격 실험이 참으로 보기 좋다.

기업의 R&D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참신했으나 아깝게 실패한 사례,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실패 원인을 확인하게 된 사례 등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실험은 연구자 개개인이 겪은 실패경험을 사장(死藏)시킬 게 아니라 기업자산으로 축적하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런 실험은 SK하이닉스나 반도체 분야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이른바 ‘실패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일부 글로벌 기업과 벤처기업을 제외하면 R&D 실패 인정에 인색한 게 현실이다.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 주도 R&D 성공률이 80~90%를 육박할 정도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도전적 연구성과는 별로 없다. R&D 실패 시 불이익이 주어지다 보니 연구자가 성공이 눈에 보이는 ‘안전한 R&D’만 해온 결과다. 정부출연연구소가 경쟁력을 상실한 것도 필연적 결과다. 미국 등 선진국 정부가 실패를 용인하면서 미래 첨단기술의 씨를 뿌리는 R&D 투자에 나서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부는 뒤늦게 ‘성실 실패’를 용인하겠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또 다른 ‘낙인’으로 받아들이는 게 연구 현장의 분위기다. ‘성실 실패’와 ‘불성실 실패’를 나누는 기준이 자의적인 데다, ‘성실 실패’로 분류되더라도 감사원이 들이닥쳐 실패를 문제삼으면 골치 아프다는 인식에서다. 연간 20조원에 가까운 정부 R&D 예산이 투입되는 실상이 이렇다.

우리 경제가 혁신성장을 하려면 실패를 바라보는 인식부터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적인 연구에 나서도록 하려면, SK하이닉스의 실험이 기업을 넘어 공공부문으로도 확산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