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러셀 미드 -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북한의 핵무기 개발 움직임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화… 중동서 서방동맹 흔드는 러시아
시리아서 기득권 굳히는 이란… 이슬람 테러리즘의 위협
'즉흥적인 보스' 트럼프와
절차 중요한 외교정책 사이서
볼턴은 자신의 실력 입증해야
[ 주용석 기자 ]
볼턴의 백악관 입성을 환영한다. 1940년 이후 어떤 국가안보보좌관도 지금처럼 급박하고, 복잡다단한 도전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
다섯 가지 위협이 헨리 키신저의 자리에 앉은 볼턴을 기다리고 있다(키신저는 닉슨·포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임하며 미국과 중국의 수교를 이끌어냈다.)
첫째, 미국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움직임이다. 북핵 위협은 이제 결정적 분기점에 다다랐다. 둘째, 미·중 무역전쟁이 맞물린 가운데 이뤄지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화다. 셋째, 서방의 동맹 체제를 흔들고 중동에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넷째,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기득권을 굳히려는 이란이다. 이란의 이런 움직임은 이스라엘은 물론 과거 적대관계였던 아랍의 이웃 국가들을 자극하고 있다. 다섯째, 여전히 도사리고 있으며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슬람 테러리즘의 위협이다.
이 같은 위협에 대처하는데, 백악관의 선택은 제한적이다. 과거 17년간 뚜렷한 성과 없는 전쟁을 치른 결과, 국제 분쟁에 개입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인들의 여론은 극단적으로 나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패해 수세에 몰리고 심지어 의회의 탄핵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에 매우 적대적이다. 외교정책에서 트럼프 정부를 믿고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는 껄끄러워졌다. 유럽과 아시아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파트너 관계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터키는 러시아와 이란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전 세계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적들은 모두 ‘엉클샘(미국)’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길 바란다는 점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이슬람 지하드 전사가 하나의 거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이해관계는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로 이어진다. 그 결과, 미국이 가장 곤혹스러운 시기에 위기가 터질 수 있다. 바로 그 시기를 미국이 가장 불편해한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리고 볼턴에게는 보스가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즉흥적인 리더십을 워싱턴의 관행에 맞추는 데 관심이 없다. 트럼프는 기존 외교정책이 결함투성이이며, 직업 관료들이 자신이 이끄는 행정부의 기반을 잠식하려 하며, 지난 70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이 됐던 기본원칙의 상당수를 버려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를 맡으면서 볼턴은 즉흥적인 트럼프와 프로세스(절차)가 중요한 외교정책 사이에서 시험에 들게 됐다. 볼턴은 여기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할 처지가 됐다. 볼턴에게 달갑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과제는 혼란스러운 트럼프 행정부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볼턴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는 국가안보팀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폼페이오는 외교정책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대변하는 데 적임자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와 여러 분야에서 의견이 맞지 않았던 데다 국무부 내부에서 ‘전투’를 치르느라 기력을 소진하면서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폼페이오 체제에선 정책이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가고 국무부 전문가들도 정책 목표에 맞게 좀 더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다.
두 지역에서 사태 전개가 당분간 볼턴의 ‘메일함’을 지배할 것 같다. 우선 동아시에선 (5월 말 6월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트럼프와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면서 동시에 미·중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중동에선 이란과 맞서면서 러시아가 미국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설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와 볼턴은 미국이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타결한 핵협상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중동에서 러시아, 이란과 맞설 수 있도록 영국과 프랑스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이 같은 과제를 달성하는 게 볼턴의 임기 초반 숙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4월 워싱턴을 방문한다. 볼턴에게는 중요한 우방과 관계를 개선할 기회다. 프랑스가 독일보다 좀 더 유연하긴 하지만, 두 나라 모두 과거 이란과 타결한 핵협상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볼턴이 임기 초반 제대로 성과를 못 내면 비판자들은 재빨리 그를 공격할 것이다. 그건 불을 보듯 뻔하다. 볼턴의 재임 기간이 극적이고 다사다난한 일로 가득하리란 건 물어보나 마나다. 문제는 그가 이 자리에 불려나오기 오래전부터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폭풍을 헤치고 미국의 외교정책이란 배를 제대로 몰고 갈 수 있느냐다.
원제=Bolton Faces a Dangerous World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