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공연비, 치킨·커피로 '퉁'치는 지자체

입력 2018-04-11 18:26
봄 축제시즌 '서러운 무명밴드'

통상 섭외비 7만~10만원 선
'홍보해준다'며 열정페이 강요
재능 기부라며 떼먹는 곳도

식사권 등 대체 지급도 많아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시급"


[ 이수빈 기자 ] ‘열정적으로 공연해주시기 바랍니다.’

경기 김포의 한 스크린 야구장은 내부에 마련된 카페에서 공연할 밴드를 모집하면서 구인 공고에 이같이 적었다. 이처럼 남다른 ‘열정’을 요구하면서도 공연 대가로는 스크린 야구 이용권과 치킨, 맥주가 고작이었다. 서울 서초구청 산하 서초문화원도 12일부터 시작되는 양재천 벚꽃축제에서 무료로 공연할 밴드를 섭외 중이다. 서초문화원 측은 밴드 모집 공고에서 ‘별도의 지원 없음’이라고 명시했다.


◆인디밴드에 강요되는 ‘열정페이’

봄을 맞아 곳곳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와 행사를 빛내줄 밴드 및 극단을 구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정작 이에 따른 합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버스킹(거리공연)’으로 이름을 알리는 무명 밴드에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보수를 지급하지 않거나 영화관람권, 식사권 등으로 대체하는 식이어서 ‘열정페이’ 논란도 제기된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무명 밴드의 평균 공연료는 시간당 7만~10만원가량이다. 인디밴드 공연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마당의 김규완 대표는 “해마다 밴드들이 10만 건가량 공연을 하지만 제대로 보수를 받는 사례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계약서조차 안 쓰는 공연이 많기 때문에 공연비를 주기로 해놓고 떼먹는 업체도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영풍문고는 종각점과 홍대점에서 지난해 9월부터 매장 내에서 밴드 공연을 열고 있지만 아티스트에 대한 보수는 전혀 지급하지 않고 있다. 공연이 입소문을 타면서 홍대점 매출이 매월 20%가량 늘어나는 등 혜택을 누렸지만 오히려 무명 밴드에 이름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영풍문고 관계자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밴드가 영풍문고에서 공연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올라가는 등 홍보도 되고 공연 장소도 무료로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양평시도 이달 열리는 양평 벚꽃축제에서 공연할 밴드를 재능기부 형식으로 섭외했다. 공연비 대신 봉사확인서를 발급할 예정이다. 이천시는 도자기 축제에서 공연할 밴드를 모집하면서 교통비 1만원만 지급한다고 공고했다.

◆대행업체 위탁 빌미 ‘악습’ 개선 필요

공연비 대신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 이용권 등을 지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강남의 4성급 호텔인 알로프트는 밴드들에 공연비 대신 하루 숙박권을 제공하고 있으며 달콤커피 롯데월드타워점은 음료 쿠폰을 지급한다. 서울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도 아울렛 상품권 3만원을 주고 있다. 현대시티아울렛 측은 “열악한 거리에서 공연하는 무명 밴드에 장소와 고가 장비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제공하는 표준계약서만 제대로 지켜도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및 기업들이 축제나 행사 준비를 대행업체에 위탁하는 구조다 보니 표준계약서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례가 많다”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출연진의 보수가 미리 결정되고 표준계약서 작성이 이뤄진다면 ‘열정페이 공연’의 악습이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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