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너무나 다른 美 '샤크 탱크'와 韓 '토론대첩'

입력 2018-04-11 17:50
미국은 어릴 적부터 기업가 정신 북돋는데
한국은 '사농공상 문화' 여전히 팽배

김현석 뉴욕특파원


[ 김현석 기자 ] 미국에 ‘샤크 탱크(Shark Tank)’라는 리얼리티 TV쇼가 있다. 매주 일요일 ABC에서 방송하는데, 회당 600만 명이 볼 만큼 인기가 높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자가 매회 네 명씩 출연하고, 다섯 명의 성공한 기업가가 이들 스타트업의 사업 내용을 평가하고 투자도 한다. 평가자를 대표하는 인물인 마크 큐번은 미국프로농구(NBA) 팀인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다. 쇼 제목은 ‘다섯 명의 샤크가 있는 수조에 뛰어들어 살아남으라’는 의미다.

K뷰티 기업인 글로우레시피는 2015년 1월 이 TV쇼에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한인인 새라 리와 크리스틴 장은 한국 화장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샤크들에게서 42만5000달러를 투자받았다. 출연 직후 인터넷 주문이 폭증했고, 미국 최대 화장품 유통망인 세포라에 입점했다.

지난 4월2일 방송에서는 열네 살 중학생 두 명이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는 걸 막아주는’ 콘에 끼우는 동그란 콘을 선보였다. 아이디어는 높게 평가받았지만 학생인 만큼 사업에 전력투구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는 못했다.

샤크들이 스타트업 창업자를 무섭게 몰아붙일 때도 많다. “비슷한 아이템에 훨씬 좋은 제품이 많다”며 면박을 주거나 투자 가치를 후려치는 경우도 잦다. 괜히 샤크가 아니다.

미국에 창업가가 많은 것은 어릴 때부터 기업 활동과 기업가정신을 배울 기회가 많아서다. 미국 초등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집에서 만든 장난감 같은 것을 친구들에게 파는 일이 드물지 않다. 선생님은 혼을 내는 게 아니라 그런 학생들을 도와준다. 일종의 사업이다.

사회에서는 열심히 노력해 번 돈을 어떻게 써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니 수천만달러짜리 집이 즐비하고, 자가용 비행기들이 날아다닌다. 예전에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창업가를 만났다. “왜 구글에 취업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내 일을 해야지, 왜 구글을 위해 일해야 하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샤크 탱크’는 한국에선 성공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재벌들이 평가자로 나와 투자할라치면 “돈질한다”는 비판을 받을 게 뻔하다. 스스로 성공 기업을 일군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같은 이들이 평가자로 참여하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들이 이제 갓 창업한 젊은이를 상대로 회사 가치를 후려치거나, 눈물이 쏙 나오게 비판한다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조사하라”는 민원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에서 방영된 ‘토론대첩’이란 프로그램을 봤다. 청년들이 나와 “취업이 안 된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저성장 시대를 맞은 청년들의 현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 의사, 변호사, 공무원이 되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서 물건을 팔았다간 선생님에게 혼났을 것이다. 사농공상 문화 탓에 자본주의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해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취업이 안 되니 폐인이 속출한다. 하지만 모두가 취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창업자가 늘어야 취업자도 증가한다.

한국 경제엔 샤크들이 필요하다. 돈을 벌거나 쓰는 걸 죄악시하면 안 된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긴다.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