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호 기자 ]
우리가 알고자 하는 유감은 '遺憾'이다.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이다. 즉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
‘미투 운동’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 와중에 우리말 ‘유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사과한다고 말한 속에, 또는 이를 보도하는 언론 표현에 자주 등장한다. 대개 이런 투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한다.” 그런데 썩 자연스럽지가 않다. 사과의 진정성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유감’이란 말의 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 쓰임새는 서운하다는 뜻
‘유감’의 정체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유감을 한자로 써 보라고 하면 자칫 ‘有感’ 정도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말이고, 우리가 알고자 하는 유감은 ‘遺憾’이다. 남길 유(遺), 섭섭할 감(憾)이다. 즉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 한마디로 ‘섭섭하다’ 또는 ‘언짢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감정(憾情·이 역시 感情과 구별해야 할 말이다)이 있다는 뜻이다. “너, 나한테 유감 있냐?”라고 하면 “나한테 불만 있냐?”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 말에 사과의 의미를 담아 쓰기 시작했다. 유감의 감(憾)은 ‘대단히 강하게 느끼는(感) 감정(心)’이란 뜻을 담았다. 기쁨보다는 한스럽고 분한 감정에 나타나는 느낌을 말한다(하영삼, ‘한자어원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 금성판 국어대사전 등 모든 사전들이 그런 토대에서 이 말을 풀었다. 공통적 개념은 아쉬움, 억울함, 서운함, 불만족 등이다. 그러니 이 말은 본래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는 뜻으로 쓰기에 적절치 않은 것이다.
이 말에 사과의 의미를 담아 쓰는 용법은 일본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유감의 사전적 풀이와 용법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일본의 대표적 사전인 ‘신판 광사림(廣辭林, 1966)’에서는 유감을 ‘섭섭함이 남은 상태’로 풀고 ‘잔념(殘念: 단념하기 어려운 것, 아쉬움)’과 같은 말로 보았다.(참고로 ‘잔념(ざんねん)’은 우리에겐 없는 말이다. 우리말 ‘미련’에 해당한다.)
‘사과’로 쓰는 유감은 외교적 특수용법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60년대 외교 용어로 이 말을 썼다고 한다. ‘꼭 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는 의미를 담았는데, 다소 후회하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사태를 전향적으로 수습하려는 의도를 암시하는 말이다. 지금은 정치적 관용표현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이것을 들여다 한국에서도 우회적 사과의 뜻을 나타낼 때 유감을 쓴다. 외교적으로 이 유감은 상황에 따라 사과와 불만 양쪽으로 쓰여 특이한 용법을 보인다. 가령 지난 2월 중국 군용기가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했을 때 정부에서 중국에 유감을 밝혔다. 이것은 ‘항의, 불만’에 가깝다. 이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베트남 방문 때 유감 표명을 한 것은 ‘사과’에 가깝다. 어느 쪽이든 의미가 딱 떨어지는 표현이 아니고 완곡하게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외교적 특수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유감은 사과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유명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하고, 사과할 때는 사과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모호한 말이 많아지면 사고(思考)도 따라서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미투 운동에서 보이는 유감 표명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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