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늉만 내는 최저임금 개편
정부·여당, 月 상여금·숙박비만 최저임금에 포함
中企 "식비·수당도 포함해야" 강력 반발
상여금 지급방법 변경 땐 勞 동의 받아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원칙은 지켜져야"
[ 백승현/좌동욱 기자 ] “노동시장 이중구조, 즉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정부가 눈치 보며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꼴이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을 지낸 한 경제 전문가가 최근 논의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안에 대해 내린 평가다. 정부와 여당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의에서 월단위 상여금과 숙박비만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쪽으로 개편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통과부터 시키고보자?
정부·여당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논의가 촉발된 취지와 거리가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산입범위 개편 문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본격 부각됐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된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였다.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취지에 걸맞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계의 의견도 반영됐다.
하지만 이번 정부안에서는 갑작스럽게 인건비 부담이 늘게 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나아가 460만 명(23.6%)이 넘는 최저임금 영향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입범위 이슈가 불거진 이후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례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수개월 논의를 하고도 결론을 못 내자 공을 넘겨받은 국회가 여론을 의식해 일단 통과부터 시키기 위해 ‘거래’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상여금, 중기엔 ‘남의 얘기’인데…
상여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이슈가 촉발된 주된 이유가 아니다. ‘연봉 7000만원 받는 최저임금 근로자’가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 및 영세 소상공인에게 고용돼 있다. 이들 사업장은 영세할수록 상여금은 ‘딴 세상 얘기’다. ‘숙식비’가 아닌 ‘숙박비’는 주로 외국인 근로자에게 해당될 뿐 국내 근로자와는 관련이 적은 인건비 항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상여금과 숙박비만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려 하자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공장을 문닫게 됐다는 중소기업치고 상여금을 꼬박꼬박 주는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중요한 건 식비 교통비 근속수당 등 확실한 산입기준을 정해 하루빨리 시행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정책을 담당하는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이런 식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조정되면 수혜자는 임금체계가 시스템화돼 있는 대기업과 그 근로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최저임금 급등과 함께 경영난을 겪는 영세한 중소기업의 숨통을 터주자는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노사 현실 모르는 탁상공론”
경제계는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뿐만 아니라 격월, 분기, 반기, 연간 단위로 지급하는 상여금은 물론 식비, 근속수당 등 현금성 임금 모두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뿐아니라 그동안 정부 정책에 협조적이었던 대한상공회의소까지 정부·여당 안에 반발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 현실을 알지 못하는 탁상공론”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대부분 단체협약으로 정기 상여금 기준 및 지급 방식을 규정하고 있어 이를 바꾸려면 노조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가 향후 불이익을 볼지 모르는 상여금 지급 주기 변경에 순순히 동의하겠냐는 주장이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올해 초 노조와 단체협약 협상 과정에서 격월 및 설·추석 등에 지급하는 상여금 800%를 매달 나눠 지급하는 식으로 바꾸려 했지만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줄다리기 끝에 노사는 상여금 800% 중 300%만 매월 25%씩 나눠 지급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상여금을 나눠 지급하는 대신 다른 수당을 올려 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백승현/좌동욱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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