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제사주재자 협의 안 되면 長男 우선"… 양성 평등에 어긋나

입력 2018-04-06 18:54
수정 2018-04-07 05:33
<45> 제사주재자의 결정방법
(대법원 2008년 11월20일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정구태 <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 >



누군가가 사망하면서 자신의 유골을 공원묘지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면, 그 유언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가. 망자의 딸들이 망자의 이런 의사에 따라 그를 공원묘지에 안장했는데, 망자의 장남이 뒤늦게 나타나 유골을 선산으로 이장하겠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은 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대법원 2008년 11월20일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런 의문에 대한 대법관들의 고뇌를 담고 있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판결의 사실관계를 보자. 원고는 A 및 그와 법률혼 관계에 있는 B 사이에서 출생한 3남3녀 중 장남이고, 피고들은 A 및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C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1남2녀)이다. A는 1947년 B와 혼인해 원고 등 3남3녀를 두었는데, 1961년께부터 B와 떨어져 C와 동거에 들어가 2006년 1월 사망할 때까지 약 44년간 살면서 그 사이에 피고들을 두었다. 피고들은 A가 사망하자 유체를 그의 뜻에 따라 공원묘지에 안장했다. 원고는 A의 유체를 선산에 준비해 놓은 묏자리에 모셔야 한다면서 이장(移葬)을 요구했고, 피고들이 이를 거부하자 피고들을 상대로 A의 유체 인도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A의 유체·유골에 대한 소유권은 제사주재자에게 있고, A의 장남인 원고가 A의 제사주재자이므로, 피고들은 원고에게 A의 유체를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들은 “A의 생전 의사에 따라 A의 유체를 공원묘지에 안장한 것이므로 원고도 이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심과 제2심 판결은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유체·유골에 대한 소유권은 오로지 매장·제사·공양 등을 할 수 있는 권능과 의무를 내용으로 하는 특수한 소유권이고, 이에 대한 권리는 민법 제1008조의 3에 준해 제사주재자에게 귀속된다”고 하면서, “관습상 종손이 있는 경우라면 그가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손에게 제사주재자 지위가 인정되므로, A의 장남으로서 제사주재자 지위에 있는 원고에게 A의 유체에 대한 권리가 귀속되고, 피고들은 원고에게 이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피고 “유언에 따른 안장은 존중돼야”

이에 대해 피고들은 상고했다. 대법관 7인의 다수의견은 먼저 “상속인 간의 협의와 무관하게 종손인 적장자(嫡長子)가 우선적으로 제사를 승계해야 한다는 종래의 관습은, 가족 구성원인 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적서(嫡庶) 간에 차별을 두는 것이어서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변화된 가족제도에 원칙적으로 부합하지 않게 됐고, 이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법적 확신 역시 상당 부분 약화됐으므로, 더 이상 관습 내지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으며, 그런 관습에 터 잡은 종래의 대법원 판결들 역시 더 이상 판례법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며 종래의 판례를 폐기했다.

그리하여 다수의견은 “하나의 법률관계에서 여러 이해당사자의 견해가 대립될 경우 협의에 의하는 것이 가장 조리(條理)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공동상속인들이 있으면 그 공동상속인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제사주재자가 정해져야 한다”고 했다. 다만 “공동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가, 공동상속인 중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조리에 부합한다”고 했다.

▶“유체·유골은 제사주재자에게 승계”

한편 다수의견은 “사람의 유체·유골은 매장·관리·제사·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분묘에 안치돼 있는 선조의 유체·유골은 민법 제1008조의 3 소정의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고, 피상속인(망자)의 유체·유골 역시 위 제사용 재산에 준해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고 하면서, “피상속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 장소를 지정한 경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는 존중돼야 하고 이는 제사주재자로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제사주재자가 무조건 이에 구속돼야 하는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다수의견은 원심 판결이 제사주재자로 결정한 전제로 삼은 법리는 잘못됐지만, 이 사건에서 A의 장남인 원고와 피고들을 비롯한 다른 공동상속인 사이에서 누구를 A의 제사주재자로 할 것인지에 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이상 A의 장남인 원고가 A의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봤다. 따라서 원심판결의 결론은 정당하고 따라서 피고의 상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수의견은 “상속인 간의 협의와 무관하게 우선적으로 적장자가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종래의 관습은 가족 구성원인 상속인들의 자율적 의사를 무시하고 적서 간에 차별을 초래해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반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공동상속인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남의 아들, 즉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 중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다수의견과 같이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장남 등이 당연히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으로 할 경우, 장남 등은 얼마든지 협의의 불성립을 유도함으로써 제사용 재산을 단독으로 승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처음부터 장남이 제사주재자로 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법원이 제사주재자 정하는 방법도

다수의견은 제사주재자의 결정에서 적서(嫡庶)의 구별을 없애고 딸만을 자녀로 둔 가정에서 장녀의 우선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전통적인 종법사상과 부계혈족 중심의 가(家)의 관념에 입각한 장자 우선 원칙을 여전히 지도적 원리로 유지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성별 및 연령을 기준으로 공동상속인 사이에 차별을 두는 것이어서 다수의견 스스로 내세운 전제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순에 빠졌다. 또 우리 가족법이 오랜 기간에 걸쳐 헌법상의 평등원칙을 가족관계 내에서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자 해 온 노력과도 배치된다.

공동상속인 사이에서 누구를 제사주재자로 할 것인지에 관해 협의가 이뤄지지 않거나 협의할 수 없는 경우 법원이 망자와 공동상속인 사이의 생전의 가족관계 및 생활양태 등의 객관적 요소와, 망자의 생전 의사 혹은 유지(遺志), 생존 배우자 및 공동상속인들의 의사 등의 주관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속인 중에서 제사주재자로 가장 적합한 자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판결은 가족법에서 이른바 전통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전통’이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 헌법의 가치질서,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정신 등을 고려한 현재 시대의 의미로 파악돼야 한다.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전통문화 또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신 처리에 대한 유언 '법적 효력' 인정해야

‘대법원 2008년 11월20일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망자가 자신의 사후 유체의 처리방법에 관해 명시적인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도 그것은 유언사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단지 도의적인 의미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가지는 권리는 인격권적인 성질의 것이므로, 망자가 자신의 장례와 유체 처리에 관해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명했다면 유언사항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사후적(死後的) 인격보호’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

이 판결에서 대법관 2인의 반대의견도 망자가 장례·장기기증·분묘개설 등에 관해 생전에 종국적인 의사를 명확하게 표명한 경우 그 의사는 일정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했다. 이어 반대의견은 망자의 의사대로 이미 장례나 분묘개설 기타 유체의 처리가 행해진 경우 유체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소유권을 주장하며 분묘를 파헤쳐 유체를 자신에게 인도할 것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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