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
[ 유승호 기자 ]
“가게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것은 큰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골목상권 살리기에 나선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백악관에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정상들과 회담하기에 앞서 “미국 전역에서 소매상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매상 몰락이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편리한 온라인·모바일 쇼핑을 앞세운 아마존이 전방위적으로 시장을 파고들면서 오프라인 매장들이 경영난에 처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달 31일에도 트위터를 통해 “아마존이 우체국에 적정 수준의 배송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며 “아마존은 당장 실질적인 비용과 세금을 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앞서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존 때문에 내 친구들이 사업을 망치게 생겼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사업을 망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들만이 아니다. 미국 최대 장난감 판매업체 토이저러스는 지난달 미국 내 735개 매장을 매각하거나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 H&M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영업이익이 62%나 감소했다. H&M은 팔리지 않은 재고가 4조5000억원어치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줬다. 미국 부동산정보업체 라이스가 미국의 77개 지역 쇼핑몰을 조사한 결과 1분기 말 현재 공실률은 8.4%로 2012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았다.
아마존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독점규제법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마존은 힘을 남용하고 있고 시장 지배력을 납품 업체들을 착취하는 데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마존 때리기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회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온라인·모바일 쇼핑 확산이 전통적인 유통업체 위기를 부르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몰락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토이저러스 파산엔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확산되면서 장난감 수요가 줄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아마존을 비롯한 전자상거래 기업뿐만 아니라 월마트 등 다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완구를 저가에 판매한 것도 토이저러스에 위협이 됐다. ‘부모들이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싸우기 싫어 완구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유 역시 토이저러스 몰락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미셸 창 맥그래스 레드어소시에이츠 파트너)도 있다.
H&M의 실적 악화도 자체적인 경영전략 실패가 중요한 원인이다. H&M의 영업이익률은 2007년 24%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지난해 10%까지 떨어졌다. 반면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자라는 10%대 후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H&M이 지난 20년간 점포를 500개에서 4700개로 늘렸지만 이익을 희생시킨 성장이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존을 공격하는 배경엔 정치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저스가 소유한 워싱턴포스트가 그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해 왔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도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을 어려움에 빠뜨린 것은 아마존이 아니라 소비자들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몰락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상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아마존을 비롯한 온라인·모바일 쇼핑으로 몰려간 결과다.
조시 배로 비즈니스인사이더 편집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6300만 표를 얻었지만 아마존의 프라임 회원은 9000만 명”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아마존을 이길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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