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모성애 코드 없었던 '당신의 부탁', 쿨과 건조함 사이

입력 2018-04-06 17:57
임수정 윤찬영 주연 '당신의 부탁'
'환절기' 이동은 감독 신작



"제가 엄마는 처음이라서요."

임수정 주연의 영화 '당신의 부탁'은 가족에 대한, 구체적으로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아들에게 법적인 엄마로 남겨진 효진(임수정)과 자신이 기억하는 친엄마를 찾아다니는 16살 종욱(윤찬영)이 갑자기 가족이 되면서 시작된다.

영화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에 대한 상실한 아픔과 새롭게 맺은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회복의 과정을 진정성 있고 담백하게 그렸다.

'당신의 부탁'에는 법적인 엄마 효진 외에도 갓 아이를 출산한 초보 엄마부터 생각지도 못한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한 엄마까지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혈육의 범주를 벗어나 더 넓은 의미의 '엄마'를 생각하게 한다.

6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당신의 부탁' 언론시사회에서 이동은 감독은 "우리에게 엄마는 한명이지만, 또 여러명이 될 수도 있다. 영어 제목은 '마더스'(Mothers), 시나리오 작업 때 가제는 '마이 아더 마더'(My Other Mother)였다. 낳아준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같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글을 쓰고 연출을 하게된 이유를 밝혔다.


사망한 남편의 아이, 피도 섞이지 않은 종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효진 역은 배우 임수정이 연기했다. 감독은 "임수정 배우는 내 욕심"이라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임수정이 진행하는 '필름클럽'이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일상적이고 털털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동안 임수정은 '연인'의 모습에 가까웠는데 효진의 모습과도 가깝더라.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줘서 감사하다"라고 설명했다.

임수정은 여성 중심 영화의 기근 속에서 '당신의 부탁'이 매우 감사했다. 그는 "한국 영화계에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나오는 작품이 귀하다. 배우 입장에서 반가웠다. 그래서 내밀어 주는 손을 기분 좋게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영화의 (남성 중심으로)치우친 부분도 곧 다양해 질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고 있고. 앞으로도 좋은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가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극중에는 16살 소년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입장의 효진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엄마가 나온다.

임수정은 "촬영하면서 배우, 스태프들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참 어렵다. 준비가 됐기에 그렇게 부르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회에서 점점 가족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것을 새겨볼 수 있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윤찬영은 16살 인생에 새 엄마를 맞게 된 종욱 역을 연기하며 극중 데면데면한 모자 사이를 잘 드러냈다.

그는 "영화에서 종욱이가 엄마를 계속 찾아다닌다. 종욱은 효진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엄마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수용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잘 살아갈 것 같다. 엄마란 고른다고 바뀌는 존재가 아니다. 저도 어머니께 잘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된다"라고 솔직 고백했다.

영화는 갑자기 엄마와 아들이 된 효진과 종욱의 관계를 통해 낯선 엄마에서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성장과 선택을 통찰력있게 살폈다. 억지 눈물도, 쥐어짜낸 위트도 없는 것이 '당신의 부탁'의 미덕이다. 이 영화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할 만하다.

이동은 감독은 "개봉에 앞서 영화제에서 영화를 선보이고 제가 생각했던 거보다 따뜻하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한편으로 좋게 말하면 쿨하다 인데 어떤 분들은 건조하다고 느끼는 분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살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정상' 범주에 든 사람들도 이야기를 해 보면 그들이 가진 상처나 경험 등이 나온다. 때문에 이 이야기도 열린 마음과 따뜻한 눈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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