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 지분을 확보한 뒤 경영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른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상법에 경영권 방어책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경영권이 불안정해진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집중 타깃이 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에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다양한 제도가 포함된 반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책에 관한 내용은 없다.
정부는 상법 개정안에서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의 도입 및 의무 시행을 추진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임원에게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선임 이사수만큼 투표권을 갖고, 특정인에게 몰표를 줄 수 있는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다. 모두가 대주주 전횡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외부 세력의 경영권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
현재 국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책은 자기주식 취득 외에는 사실상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차등의결권(특정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 포이즌필(적대적 M&A가 발생했을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 황금낙하산(적대적 M&A를 당하는 기업의 임원이 퇴직할 경우 거액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책을 보장해주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에 지배구조를 선진국처럼 바꾸도록 하면서, 경영권 방어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국가 안보가 불안하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영권을 지킬 수 없으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다. 기업들이 투자에 쓸 돈을 경영권 방어에 쏟아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주주는 물론 소액주주들에게도 손해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도 좋지만, 경영권 방어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또 다른 ‘엘리엇 사태’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