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규제·전매 금지·대출 억제… 서민 청약 원천차단 '부메랑'

입력 2018-04-03 18:28
분양가 규제의 역설

'무주택자=서민' 등식 깨야
'디에이치자이 개포' 분양에
돈 많은 무주택자 다수 당첨

무주택 우선 청약제 '허점'
소득기준 빠져있는 가점제
2억짜리 집 갖고 있으면
전세 10억 세입자보다 불리

"실수요자 대출 한도 늘리고
채권입찰제 도입해 볼만"


[ 이정선/이소은 기자 ]
‘디에이치자이 개포’ 103㎡ 주택형에 당첨된 50대 중반 A씨는 대기업 전무다. 연봉 3억원이 넘는 고소득자이지만 해외 주재원으로 자주 오가는 통에 굳이 아파트를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무주택자인 덕에 청약가점이 69점으로 높은 A씨는 6억~7억원의 시세차익이 예상된다는 말을 듣고 청약에 나섰다가 행운을 거머쥐었다. 서울 대치동에서 12억원짜리 전세아파트에 거주하는 40대 후반 남성 B씨는 다자녀 특별공급(만점 100점)으로 이 아파트 입주 자격을 얻었다. 늦은 결혼에 어린 자녀가 셋이라 청약가점이 80점으로 높았다.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청약 결과가 현 청약시스템에 묵직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청약제도가 무주택 서민 우선이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주택자=서민’ 등식부터 깨야

지난달 21일 1690가구 규모의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1순위 접수에는 3만1423개의 청약통장이 몰렸다. 전용 84㎡ 아파트 분양가가 12억~14억원대인 데다 중도금 대출이 막힌 조건을 감안하면 엄청난 경쟁률이다. 청약 당첨자의 최고 가점도 79점(만점 84점)에 달했다.

분양업계에서는 청약자 상당수가 ‘돈이 많은 강남권 거주 무주택자’라고 분석했다. 해외근무, 복잡한 세금 등을 이유로 고소득자면서 주택을 구입하지 않은 잠재 수요층이 두텁다는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서울의 ‘자가 점유 비율’은 42.1%다. 자가 점유 비율은 자신이 소유한 주택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 비율을 말한다. 강남구는 34.1%, 서초구는 40.5%로 서울 평균에 못 미친다. 도봉구(58.2%), 노원구(51.0%) 등에 비해 강남권에 전세입자가 훨씬 많이 거주하는 셈이다. 학군, 직주근접 등 거주 여건이 뛰어난 강남에서 전세로 거주하려는 수요가 그만큼 많아서다. 분양대행사 엠비엔홀딩스의 최성욱 사장은 “타워팰리스 등 고가 주택이나 오피스텔에서 거주하는 무주택자도 상당수”라며 “무주택자를 전제로 한 청약시스템이 현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채권입찰제로 보완해야”

현재 청약제도는 ‘40대 중반이면서 결혼해 자녀를 두고 있는 무주택자’에게 높은 가점이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다. 사회의 보편적 통념을 기준으로 내 집 마련의 우선순위를 설계한 것이다. 20~30대나 50대 이상은 결혼 여부, 자녀 분가 등의 이유 등으로 가점이 낮아진다. 다만 가점제엔 ‘소득기준’이 빠져 있다. 전세 가격이 10억~20억원이 넘는 집에 사는 무주택자에 비해 2억원짜리 집을 보유한 유주택자가 훨씬 불리한 구조다.

현 청약제도에서 이 같은 미비점을 보완하려면 ‘채권입찰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채권입찰제는 분양가와 주변 아파트 시세 간 격차가 클 때 청약자가 채권을 매입하도록 해 시세차익 일부를 국고로 환수하는 제도다. 2006년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등에 공급된 전용 85㎡ 초과 아파트에 적용됐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 차익이, 그것도 일부 고소득자에게 주어지는 상황이 국가가 운영하는 청약시스템에서 벌어지는 것은 큰 문제”라며 “채권입찰제로 이익을 환수해 서민 주거 안정의 재원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대출·전매 규제도 시장 왜곡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시세차익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당첨 기회를 막는 대출·전매 규제도 모순점으로 거론된다. 강남권의 분양 가격이 9억원을 넘다 보니 당첨이 되더라도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아예 청약을 포기하고 있다. 분양권 전매도 불가능해 차익만 누리고 빠질 수도 없다. 청약시스템이 서민이 아니라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셈이다. 강남권 아파트 특별공급에 줄줄이 당첨된 20대도 재력가 부모에게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부모 도움 없이 10억원이 넘는 분양대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나이기 때문이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산층이 아파트 청약에 나서지 못하면서 청약시장이 가진 자들의 리그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공급이 충분하면 과열 청약이 줄어들게 마련”이라며 “공급을 늘리고 분양가 규제를 철폐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정선/이소은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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