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사는데 수천만원… 키덜트 시장 1조 '훌쩍'

입력 2018-04-03 17:09
산업리포트

인기 캐릭터제품엔 프리미엄
가격 최고 10배까지 거래
'피규어·레고 재테크'도

홍콩 핫토이·덴마크 레고 등
해외제품 국내시장 독차지

국내 완구업계는 초기단계
가이아, 2016년부터 제조


[ 이우상 기자 ]
직장인 유모씨는 얼마 전 아이언맨 피규어를 샀다. 변신 중인 아이언맨의 모습을 6분의 1로 축소한 제품. 가격은 300만원이 넘는다. 김모씨는 영화에 등장한 아이언맨 슈트 피규어를 종류별로 수집 중이다. 피규어를 모으는 데 쓴 돈은 약 2000만원. 유씨는 “이 정도로는 키덜트 모임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며 “피규어를 모으는 데 거금을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을 말하는 키덜트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취미를 넘어 재테크용으로 수집하는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키우고 있다.

1조원 넘긴 키덜트 시장

업계는 작년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집해 진열해 놓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얻는 사람들이 이 시장의 주요 소비자다. 1억원이 넘는 돈을 제품 구매에 쓰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국내 소비자가 주로 찾는 제품은 홍콩 핫토이와 덴마크 레고, 일본 반다이 등이다. 핫토이는 아이언맨 헐크 등 인기 영화 캐릭터를 정교하게 축소한 피규어를 선보이고 있다. 조립완구 레고는 키덜트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보다 국내에서 올리는 매출이 많다. 건담 프라모델 등을 내놓는 반다이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전문 매장 등을 거점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핫토이와 반다이 등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장난감만 지난해 9500억원어치가 넘었다.

이 시장에 재테크를 위해 제품을 사는 사람들까지 뛰어들어 판을 키우고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오르는 제품이 많기 때문이다. ‘피규어 재테크’ ‘레고 재테크’라고 부른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 개수가 한정된 인기 캐릭터 피규어는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르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대형 우주전함 ‘스타디스트로이어’ 레고 제품은 출시 당시 판매가가 30만원대였지만 이베이 아마존 등에서 300만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국내에서는 완구 전용 진열장 제조업체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갖고 놀기 위해 장난감을 사는 아이들과 달리 키덜트족은 수집을 목적으로 장난감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완구용 진열장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마이뮤지엄의 최민기 대표는 “50만~130만원대 양문형 냉장고 크기 장식장 주문이 월 100개 이상 들어온다”고 말했다.

맹아기인 국내 완구업계

키덜트에게 일본 대만 여행 때 피규어숍 쇼핑은 필수다. 국내 완구업체들이 성장하는 시장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완구 매출 1, 2위 업체인 영실업과 손오공에는 키덜트를 위한 자체 생산 제품이 하나도 없다.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국내 완구기업은 가이아코퍼레이션이다. 2015년 핫토이 피규어를 유통하다 2016년 말부터 직접 기획·제조에 나섰다. 지난해 내놓은 ‘로봇 태권브이’ 피규어 60㎝ 모델과 40㎝ 모델은 제작한 제품이 완판됐다.

가이아코퍼레이션 관계자는 “품질만 좋으면 토종 캐릭터로도 키덜트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제품을 내놓게 됐다”며 “올해 키덜트사업부 목표 매출은 60억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키덜트 시장 성장과 관련해 박한선 정신과전문의는 “인간은 성인이 돼도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어린 시절 하던 장난을 다시 치는 등 유년기의 행동양식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며 “경제적 형편이 이전보다 개선되고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면서 과거에 자신이 좋아하던 것을 재현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키덜트 문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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