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최저기준 폐지 때문에 정시가 축소된다고?

입력 2018-04-03 15:30
수정 2018-04-03 17:08
[팩트체크]

주요大 정시 이월인원, 수시 미등록 충원횟수가 관건



교육부가 최근 주요 대학들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정시전형 확대를 주문했다. 하지만 그간 정시 확대를 요구해온 학부모 등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앞서 교육부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안내를 통해 대학들에게 수시전형 수능최저학력기준 폐지를 권고한 탓이다.

3일 교육계에 따르면 상당수 학부모는 “수능최저기준 폐지가 정시 확대 효과를 상쇄한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동안 수시 수능최저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불합격한 인원만큼 정시로 이월해 뽑았는데, 수능최저기준이 없어지면 정시로의 이월이 사라져 실질적으로는 정시 선발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이날 연세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일한 근거를 들어 “정시 축소를 조장하는 수능최저기준 폐지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일 연세대가 주요 대학 가운데 가장 먼저 수능최저기준을 폐지하고 정시 규모를 확대한 2020학년도 입학전형계획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연세대가 수능최저기준을 폐지하고 정시를 33%로 확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이는 전형적인 ‘조삼모사’로 국민을 우롱하고 학생·학부모를 기만하는 것”이라며 “정시를 조금 늘리는 대신 수능최저기준 폐지에 따라 수시에서의 이월이 거의 없어져 정시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8학년도 수시에서 정시로의 이월 인원은 연세대 297명을 비롯해 서울대 175명, 고려대 190명 등이었다. 연세대가 2020학년도 입시에서 늘리기로 한 정시 인원은 125명. 따라서 수능최저기준 폐지로 인해 297명에 달하는 이월 인원이 거의 사라지면 정시의 ‘실질적 후퇴’라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되는 규모를 정하는 핵심요인은 수능최저기준 적용 여부가 아니라, 수시 미등록에 대한 대학의 충원(추가선발) 횟수다.

수시 미등록 인원은 크게 중복합격, 수능최저기준 미달의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이를테면 6회까지 지원하되 한 대학만 등록할 수 있는 수시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수험생이 연세대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가 전자에 속한다.

수능최저기준 폐지가 정시 규모를 축소시킨다는 주장은, 대학들이 최초합격자 발표로 수시전형 절차를 끝낼 때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학마다 몇 차례 추가선발을 진행한 뒤 그래도 미충원이 있으면 정시로 이월한다. 이때 추가선발은 수능최저기준을 통과한 몇 배수 예비인원 중에서 뽑는다. 기준을 충족 못해 이월되는 인원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선발시스템이다.

연세대 입학처 관계자는 “수능최저기준을 충족 못해 불합격한 인원이 정시로 이월된다는 건 사실무근”이라며 “예년 데이터를 토대로 이월 규모까지 종합 예측한 결과 ‘실질적 정시 비중 40% 이상’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수능최저기준 폐지와 정시 축소를 연계하는 건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입시전문가들도 이 설명에 힘을 실었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연세대 케이스에서 수능최저기준 폐지와 정시 이월은 무관하다”며 “일례로 연세대 특기자전형은 수능최저기준이 없지만 이월 인원은 많았다. 타 대학 중복합격의 영향이 절대적이란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 역시 “오해가 큰 것 같다. 둘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다만 지역균형선발전형의 수능최저기준에 걸려 탈락하는 숫자가 적지 않은 데다 추가선발을 한 차례만 하는 서울대는 예외일 수 있다. 그러나 서울대는 현재까지 수능최저기준 폐지를 검토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수능최저기준 폐지에 따른 정시 축소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는 뜻이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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