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양상 치닫는 '韓·美 환율합의' 논란

입력 2018-03-30 18:29
팩트 체크

FTA와 별개 협상 맞지만… 美에 환율 양보 있었던 듯

(1) 한·미 FTA에 환율 연계?
FTA·철강 협상과는 무관
韓 "야구·축구처럼 전혀 별개"

(2) 환율 합의는 문서로?
나바로 "부속 합의문에 넣었다"
기재부 "아직 정해진 것 없다"

(3) 한·미 주장 왜 다른가?
"美 선거 앞두고 성과 부풀리기"
"한국 정부가 합의 숨기고 있어"


[ 임도원 기자 ] 한국과 미국 간 환율 분쟁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금지’에 대해 양국 간 합의가 있었는지를 놓고 두 나라 정부가 연일 상반된 설명을 내놓으면서 궁금증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환율 협의와 관련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및 철강 관세 협상과 연계했는지 △별개로 협상했다면 어느 수위에서 했는지 △협상 결과를 문서화했는지 등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이 한·미 환율 협의를 정면으로 문제삼으면서 정쟁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형식적으로 FTA와 별개”

양국 정부 입장이 공식적으로 일치하는 지점은 FTA 협상과의 연계 여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철강과 FTA 개정 협상은 축구경기를 한 것이고, 환율 문제는 전혀 다른 시기에 다른 경기장에서 야구를 한 것”이라며 “이를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FTA와) 환율은 전혀 별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정부 설명도 크게 봐선 다르지 않다. 미 백악관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FTA 논의와 별도의 트랙으로(on a separate track) 환율 협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야구와 축구 함께한 종합체육대회?

형식적으로는 FTA 협상과 별개였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전체 협상의 한 틀(패키지 딜)로 진행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야구’와 ‘축구’ 경기를 따로 치른 것이 아니라 ‘종합체육대회’를 열었다는 관측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29일(현지시간) “철강 관세와 외환, 한·미 FTA 세 분야에서의 합의는 독립적이지만 한·미 통상관계를 정의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 대목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정부로서도 무역적자와 뗄 수 없는 환율 문제를 FTA 협상과 한 틀에서 진행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 무역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동차무역정책위원회(AAPC)는 “무역협정에서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강력하고 강제성 있는 규정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한 통상 전문가는 “우리 정부 주장대로 FTA와 별개 협상이 맞다고 해도 논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며 “개별 환율 협상에서 ‘주권’을 침해받을 정도의 합의를 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인데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서 또는 구두 합의 여부도 쟁점

양국 주장이 가장 첨예하게 엇갈리는 부분은 환율 관련 합의 여부다. 백악관과 USTR은 “양해각서(MOU) 체결이 마무리 단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터 나바로 미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도 “환율 협상결과를 부속 합의문에 넣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이 부풀리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MOU가 아니라 구두 합의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CNN머니는 “협상에서 환율조항을 문서화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환율과 관련해 선의로 행동하기로 그냥 (구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지만 문서화나 구두 합의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양보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양측 주장 왜 엇갈리나

한국 정부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FTA 타결에서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리 정부가 ‘환율 주권’ 논란을 의식해 협상 자체를 실체보다 축소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 특히 야당에서 ‘은폐론’을 제기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환율 합의를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한·미 FTA 협상 발표는 국민 기만행위”라며 “한국을 사실상 환율 조작국으로 명시하고, 스스로 조작국을 인정한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는 “통상교섭본부가 발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