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탈진실 사회의 가짜뉴스

입력 2018-03-29 17:47
이정회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거나 ‘힐러리 클린턴이 피자가게로 위장한 성매매업소를 운영한다’는 가짜 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미 대선 기간 이런 가짜 뉴스에 대한 반응 건수가 870만 건으로 주류 언론 뉴스의 730만 건보다 더 많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진실보다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탈진실(post-truth) 사회의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미 대선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경합 주’에 가짜 뉴스가 집중 유포됐다고 분석했다. 마케도니아의 일부 젊은이도 광고 수익을 노리고 친(親)트럼프 성향의 가짜뉴스를 확산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가짜 뉴스는 음흉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거나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만들어진다. 윤리나 도덕보다 오로지 조회 수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소셜저널리즘이 확산하고 유튜브 및 페이스북 등의 맞춤형 정보 제공 기능이 발달하면서 소비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접하는 ‘필터 버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유포되는 가짜 뉴스는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편견을 강화해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 한국에서 매일 유통되는 뉴스 약 3만60000건 중 1%가 가짜 뉴스라고 가정할 때 연간 경제 손실이 30조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가짜 뉴스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페이스북은 인공지능과 팩트체크 시스템을 이용해 이를 걸러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구글도 검색 알고리즘 조정에 나섰다. 프랑스는 가짜뉴스를 유통한 웹사이트를 폐쇄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고, 독일은 유해 게시물을 방치한 소셜미디어 기업에 최고 5000만유로(약 6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운영자의 감시 책임을 강화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흑색선전 전담팀을 운영 중이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가짜 뉴스에 악용되는 인터넷 아이디 불법거래 단속에 나섰다.

가짜 뉴스가 극성을 부리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올해 3월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허위 정보’ 대응에는 이해관계가 있는 주체들의 ‘협력’과 ‘다차원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사후 대책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정부, 인터넷기업, 언론, 소비자가 협력해 믿을 수 있는 뉴스가 유통되는 건전한 기반을 조성하고 소비자 대중의 정보 분석 및 평가능력을 꾸준히 키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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