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증명된 '파킨슨 법칙'… 부처마다 "기회 있을 때 우리도 몸집 불리자"
국가공무원 4637명 증원 의결
'대기업 저승사자' 공정위, 65명 늘려 최대 증원
행안부 55명·국토부 35명
정치인 장관 있는 힘 센 부처
조직 확대 두드러져
엄격한 업무진단 없이 새로운 일거리 생겼다고
무턱대고 몸집부터 키워
[ 오형주 기자 ]
정부가 26일 국가공무원 4637명을 증원하는 내용을 담은 직제개편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올해 증원 예정인 국가공무원 9475명 중 군·헌법기관 인력(3262명)을 제외한 중앙부처 배정 인원(6213명)의 75%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는 공무원 증원의 명분으로 ‘심각한 청년실업 해소’와 ‘질 높은 공공서비스 확대’를 내세웠다.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일하는 현장 인력을 중심으로 증원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실상은 다소 달랐다. 주요부처가 제출한 직제개편안을 살펴보니 본부에서 근무하는 인력도 대거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각 부처가 전체 인력 규모를 늘리면서 본부 증원을 슬그머니 끼워넣은 것이다.
◆조직 확대 경쟁 나선 부처들
각 부처에서 제출한 직제개편안을 보면 조직과 인사, 예산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부처들이 인력을 크게 늘렸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정부 전체의 조직 규모를 적절히 관리할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중앙재난안전상황실 등 인력 소요를 명분으로 1433명인 정원을 1488명으로 55명이나 늘렸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채용시험 수요 증가와 퇴직공무원 사회공헌 프로그램 추진 등의 명목으로 20명을 충원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방위사업 관련 예산심의를 담당할 방위산업예산과와 감사관(고위공무원) 신설 등을 이유로 정원을 975명에서 1009명으로 34명 증원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주목받는 부처들도 이번 기회를 놓칠세라 대폭 본부인력 증원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 조사를 전담해 ‘대기업 저승사자’라 불리는 기업집단국을 신설하면서 정원을 394명에서 459명으로 65명이나 늘려 잡았다. 각 부처 본부 증원 중 가장 큰 규모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건강권과 연명의료 등 업무 증가를 이유로 35명을 증원했다. 중소벤처기업부(21명)와 환경부(20명)도 인력을 대폭 키웠다. 통일부(10명)와 여성가족부(8명)도 각각 200여 명에 불과한 조직을 감안하면 증원 규모가 작지 않다.
조직을 확대할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대규모 증원을 추진하는 부처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주거복지정책의 개발과 안정적 운영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주거복지관을 신설하고 인력을 35명 늘린다. 법무부는 보호관찰과 주택·상가임대차 제도 개선 관련 20명을 충원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통상현안에 대한 장기적 전략 수립 필요성 등을 이유로 신통상전략실을 신설하고 13명을 증원하기로 했다.
반면 정권의 관심에서 멀어졌거나 ‘파워’가 약한 일부 부처는 증원 규모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금융위원회는 단 2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명 증원에 그쳤다.
◆민간 위축 등 부작용 우려
정부 부처들의 ‘몸집 불리기’는 이번 정부 내내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공무원을 17만4000명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정부의 조직 운영 기조가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에서 ‘큰 정부’로 전환하면서 각 부처가 대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공무원 증원은 정확한 수요 산출 등 과학적 근거 없이 정치적 흥정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당초 올해 국가공무원 증원 규모를 1만2221명으로 정했다가 지난해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과의 치열한 협상 끝에 9475명으로 확정했다. 한 전문가는 “공무원 증원을 왜, 얼마나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논의 없이 정부가 몇 명을 충원해야 한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야당과 줄다리기를 통해 결정하면서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정부 조직의 ‘헤드’라 할 수 있는 부처 본부인력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민간부문 위축 등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파킨슨 법칙’(공무원 수는 업무량과 관계없이 계속 늘어난다)이 보여주듯이 정부 조직과 인력은 한번 늘려놓으면 쉽게 줄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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