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개인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소유권 침해는 계약 위반이므로 저항하는거죠"
재산을 지키려는 열망
사실 서양 사회에서 소유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 시대에 서양에서 모든 땅과 재산은 궁극적으로 왕이나 영주의 것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그들에게 세금을 내거나 부역을 하면서 그것들을 빌려 쓸 뿐이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내 집’ ‘내 땅’ 등의 관념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경작하고 있는 땅일 뿐, 나만이 그에 대한 권리를 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주가 무력으로 그것들을 빼앗아 가면 빼앗겨야 했다. 특히 상업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으로서는 자신들이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이런저런 명목으로 왕이나 영주에게 세금으로 빼앗기는 것이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누구도 힘으로 재산을 빼앗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세금을 걷을 수 없는 사회, 즉 소유권의 절대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이상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부르주아 계급의 열망을 정당화한 철학자가 바로 로크였다.
노동으로 자연상태를 바꿔야 재산 돼
소유권 논의에 대한 로크의 출발점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된다. 로크에게 있어 개인 간 사회계약을 통해 구성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유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소유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을 폭정이라고 말한다.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설에서 저항권을 강조한 이유도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에 따르면 만약 국가가 개인의 재산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할 경우 이는 소유권을 잘 보장하도록 위탁받은 국가의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이 노동의 대가로 얻은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국가를 바로잡기 위해 시민들은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는 ‘노동’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소유권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한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 있는 모든 것은 인류에게 공동으로 속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기 신체와 그 신체의 노동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갖는다. 따라서 노동을 부가하여 자연을 변형시킨다면 그 결과물 역시 그의 소유가 된다. 즉 소유권은 노동을 통해 자연 상태에 변화를 일으킬 때 성립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샘에서 솟아난 물이 모든 사람의 공동 소유라고 해도 주전자 속 물이 그 물을 길은 사람의 소유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결과물이라 하여 무한정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사용하거나 향유할 수 있는 범위로 소유는 제한돼야 하며 그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충분히 사용하고 향유하고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많이 소유한다면 남이 사용할 몫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므로 소유권은 남들이 향유할 만한 몫이 충분히 남아 있어서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범위로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계급에만 적용 ‘한계’
소유권에 대한 로크의 이와 같은 정당화 논리는 대대로 물려받은 권력을 통해 땅을 독점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편히 먹고사는 봉건 영주들을 겨냥한 날카로운 공격이라 볼 수 있다.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늘린 시민 계급의 재산만 정당한 소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로크가 이처럼 봉건 귀족에 맞서 시민 계급의 소유권을 옹호한 점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왜냐하면 그는 소유권 정당화 논의에서 “하인의 노동은 주인의 노동”이라고 주장하며 하인의 노동은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계급이 봉건 귀족에 맞서서는 ‘노동’의 원리를 내세우지만, 하인이 똑같이 ‘노동’의 원리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로크가 소유권 정당화 논의에서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잃게 된 이유를 생각할 때, 당시 그가 시민 계급 출신으로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하인 몇 명을 거느릴 수 있었던 부르주아였다는 사실이 쓴웃음을 머금게 한다.
◆기억해주세요
노동을 부가하여 자연을 변형시킨다면 그 결과물 역시 그의 소유가 된다. 즉 소유권은 노동을 통해 자연 상태에 변화를 일으킬 때 성립된다는 것이다.
김홍일 < 서울과학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