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눈부신 바다, 아름다운 일몰… '동양의 하와이' 오키나와

입력 2018-03-25 15:11
수정 2018-03-26 09:10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이 추천하는 여행지

일본 오키나와


비행을 하면서 만나는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손님. 이 많은 손님 중 나도 모르게 유독 애정이 가는 손님이 있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 수줍음 가득한 표정. 그날의 비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특별한 선물, 바로 어린이 손님들이다. 이 작고 귀여운 손님을 유독 많이 만날 수 있는 노선이 있으니 바로 오키나와. 10년 전만 해도 본국을 오가는 미군과 일본 손님이 대부분이던 오키나와행 항공기에는 가족여행을 떠나는 한국 손님들로 늘 활기가 넘친다. 이제는 일본에서 오사카 다음으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인기 여행지가 된 오키나와. TV 화면 속 커다란 츄라우미 수족관에 반해 떠난 우리 가족의 오키나와 여행도 벌써 네 번째가 됐고, 우리는 점점 오키나와에 매료되고 있다. 오키나와=글·사진 박혜령

오키나와 역사의 시작 - 류큐왕국

“손님 여러분 곧 착륙하겠습니다.” 오키나와 나하 국제공항이 가까워지자 창문 밖으로 에메랄드 빛 바다의 영롱한 색이 펼쳐진다. 기분 좋은 여행의 시작을 알려주는 반짝이는 태양과 그 빛을 고스란히 담은 바다. 많은 이들이 오키나와로 여행을 가는 이유도 바로 이 바다를 품은 천혜의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다.


자연환경 못지않게 오키나와만의 아름답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는 것이 있으니, 류큐왕국이 꽃피운 그들의 전통문화다. 류큐왕국은 일본 본토와 다른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오키나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오키나와의 모든 역사는 이 류큐왕국에서 시작됐다.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일본에 귀속되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독립국가 ‘류큐왕국’이었다. 1429년 나하 슈리를 거점으로 세력을 키운 쇼하시가 소국가들을 통일해 세운 류큐왕국은 지리적 특성을 살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우리의 옛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해양무역으로 번성했다. 특히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류큐왕국의 거성이었던 슈리성에는 두 문화가 만들어 낸 특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온통 붉은색으로 덮인 정전, 중국과 일본의 축성 기술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 양식. 화려하진 않지만 이 독특한 모습 덕분에 슈리성은 2000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슈리성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슈리에문은 그 웅장한 모습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으로 늘 북적인다. 편각에는 슈레이몬(守禮之防)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는데, 류큐는 ‘예절을 중요시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친절함에 ‘슈레이몬’의 의미를 절로 실감할 수 있다. 슈리성은 무료로 개방하는 곳이 많고 성터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돼 있어 류큐시대의 숨결을 느끼며 여유롭게 둘러보기에 좋다. 특히 언덕에 있어 정전 세이덴을 향해 돌계단을 오를 때마다 나하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보기 위해서는 슈리성 남쪽에 있는 슈리킨죠우쵸 돌다다미길로 향해야 한다.


약 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고즈넉한 길은 예전 류큐왕국 시대에 귀족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22㎞에 달했던 길은 태평양 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약 340m의 길만 남았다고 한다. 류큐 석회암으로 만든 돌길은 가파른 편이지만 가파른 높이만큼이나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인다. 500년의 역사를 잇는 이 아름다운 길을 다 걸어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화려한 것 하나 없는 소박하고 조용한 돌길이지만 확 트인 전망과 수수한 멋이 더해져 일본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14세기 무렵 창건돼 500여 년에 걸쳐 류큐왕국의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지였던 슈리성은 1879년 메이지 신정부에 장악되며 류큐왕국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만다.

전쟁의 비극과 기적의 1마일

슈리성이 있는 오키나와의 중심도시 나하는 공항과 가까워 오키나와 여행이 시작되는 출발점과도 같은 곳이다. 특히 국제거리는 약 1.6㎞의 직선도로를 따라 현청, 백화점, 상점, 음식점, 재래시장 등이 모여 있는 오키나와 최대의 번화가다. 국제거리의 또 다른 이름은 ‘기적의 1마일’. 이 이름에는 오키나와의 가슴 아픈 역사, 그리고 상처를 딛고 일어난 희망과 재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41년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며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1945년 종전될 때까지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그중에서도 오키나와 전투는 81일간이나 계속된 가장 치열한 대전투였다. 일본군은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오키나와 주민을 전쟁에 동원했고, 미군의 승리로 끝난 전투에서 오키나와는 무려 인구의 3분의 1인 12만 명이 희생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슬픔을 딛고 폐허가 된 땅을 다시 재건하기 시작했고, 전쟁 후 가장 빠르게 재건된 곳에 ‘기적의 1마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폐허에서 제1의 번화가가 된 국제거리에는 구경거리와 먹거리가 넘쳐나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무엇을 먹어볼까 고민하다가 오키나와 특산품인 자색고구마로 만든 베니이모 타르트를 먹으며 걷다 보니 우락부락하면서도 왠지 귀여운 표정의 사자상들이 자주 보인다. 바로 오키나와의 상징인 ‘시사’. 시사는 사자를 의미하는 오키나와의 방언으로 건물 입구나 지붕 위에 설치해 액운을 쫓는다고 한다. 입을 벌리고 있으면 수컷,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암컷이라고 하는데 건물 곳곳에 자리 잡은 시사의 각기 다른 재미난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오키나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전쟁이 끝나고 1972년 일본에 반환될 때까지 미군의 통치를 받았던 만큼 국제거리를 걷다 보면 철판 스테이크와 타코라이스, 패스트푸드 등 미국의 영향을 받은 메뉴를 많이 볼 수 있다. 오키나와에는 지금도 주일 미군기지 시설의 75%가 집중돼 있는데, 오랫동안 주둔한 미군은 음식뿐 아니라 많은 것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오키나와 중부를 대표하는 명소 ‘아메리칸 빌리지’는 1981년 반환된 미군 비행장에 미국 샌디에이고의 시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조성된 복합 문화공간으로 대형마트, 레스토랑, 게임장 등 미국 느낌이 물씬 나는 다양한 공간이 모여 있다. 멀리서도 이곳이 아메리칸 빌리지임을 알려주는 높이 60m의 대관람차는 높이만큼이나 멋진 전망과 스릴을 선사해 우리 가족이 꼭 탑승하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상징이다. 아기자기한 기념품 상점과 대관람차는 날이 저물수록,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아름다운 장식과 조명으로 한껏 빛을 낸다. 근처에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선셋비치도 있어 어두워질 때쯤 가면 더 좋다.


오키나와의 광활한 자연 품은 중·북부지역

오키나와의 북부 지역은 바다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많다. 중부에서 북부까지는 만자모, 해중 전망탑, 나고 파인애플 파크, 나키진 성터, 코우리대교 등 오키나와의 명소가 즐비하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배경 삼아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코스이기도 하다.

코끼리 코 모양의 기암절벽이 보기만 해도 재미난 만자모는 1726년 이곳에 들른 류큐왕국의 쇼케이왕이 ‘1만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들판’이라고 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류큐의 왕은 오키나와 팔경 중 하나인 이 멋진 절경에 반해 만자모까지 연회를 즐기러 왔다고 한다.


부세나 곶의 앞바다에 설치된 해중 전망탑은 수심 10m까지 이어진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 동그란 유리창을 통해 다양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스노클링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도 여러 개의 유리창을 통해 오키나와 바닷속을 눈앞에서 볼 수 있어 온 가족에게 재미난 시간을 선물해 준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끝내고 해양박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차들과 관광객이 오키나와 최고 인기 명소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1975년 국제해양박람회가 열렸던 해양박공원은 2002년 개장한 츄라우미 수족관과 돌고래 쇼를 하는 오키장극장, 열대드림센터, 에메랄드 비치 등 볼거리가 가득한 거대한 테마공원이다. 예상치 못한 규모에 어디서부터 구경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먼저 유명한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향해보자. 요즘 한국 도심에도 대형 아쿠아리움이 속속 등장했지만,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커다란 수족관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신비한 분위기가 감돌 정도로 영롱한 푸른빛을 내뿜는 대형 수족관은 ‘아름다운 바다’라는 츄라우미의 말 뜻처럼 깊은 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대형 수조를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상어와 대형 쥐가오리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그 앞에서 연신 감탄사를 자아낸다. 츄라우미 수족관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곳은 돌고래 쇼를 볼 수 있는 오키장극장. 돌고래 쇼는 빈 좌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인기 최고다. 웃음을 자아내는 돌고래들의 귀여운 묘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공연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공연을 보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어느 쪽으로 향하던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해양박공원은 츄라우미 수족관만 보고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이다. 공원을 순환하는 전기 유람차를 타면 단돈 100엔으로 이 멋진 풍광을 편안하게 앉아서 둘러볼 수 있다.

고요한 바람이 불어오는 비세마을

해양박공원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비세마을은 1000그루가 넘는 후쿠기 나무(일본 망고스틴 나무)로 둘러싸인 고요한 마을이다. 비세마을의 후쿠기 나무들은 대부분 3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졌는데, 17세기 류큐왕조 때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50여 년에 걸쳐 비세나무를 가꿨다고 한다. 방풍림으로 가꿔온 후쿠키 나무는 단단한 대신 성장 속도가 느려 정작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후쿠키 가로수길을 가꿔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후세를 위해서였다. 거친 태풍으로부터 후세를 보호해주고 싶었던 그 마음은 시대를 지나 지금의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줬다. 수레에 사람을 태우는 물소, 자전거 등 여러 수단이 있지만 비세마을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걸으며 그 고요함을 느끼는 것. 마을 곳곳에 미로처럼 나 있는 길을 걷다 보면 고요한 이곳에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며 바람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기계로는 대신할 수 없는 생생한 나뭇잎의 흔들림, 이 소리에 반해 오키나와에 갈 때마다 비세마을에 꼭 들르곤 한다. 수세기에 걸쳐 따뜻한 손길로 만들어진 길은 언제 가도 기분 좋은 평온함을 안겨준다. 지금 이 길을 걷는 우리 가족에게도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커지길 바라며….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후쿠기 가로수길을 조용히 걸어본다.

‘아시아의 하와이’ ‘평화의 섬’ ‘일본 아닌 일본’ 등 오키나와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오키나와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오키나와’ 그 자체였다. 수세기에 걸쳐 품어온 대자연과 류큐왕국을 잇는 역사의 숨결은 오로지 오키나와에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적을 이뤄내고 고유의 문화를 의연히 지켜온 오키나와. 오키나와가 가족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것은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키나와는 모든 여행자에게 잊지 못할 깊은 여운을 남겨줄 것이다.

여행 정보

아시아나 항공은 인천~오키나와 구간을 매일 1회, 부산~오키나와 구간을 주 4회 운항하고 있다. 운항 스케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유이레일을 이용하면 저렴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남부에서 북부까지 섬 곳곳을 둘러보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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