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의 중국 음식여행 (2) '상큼한 매운 맛' 후난차이
중국 음식의 다양함이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해발 4000m의 고지에서 바다까지, 북방 동토에서 아열대 우림까지, 사막과 초원에서 습지와 수향(水鄕)까지, 끝없는 평원에서 심산유곡까지.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음식 문화가 여행객 앞에 펼쳐진다. 그 가운데 한국의 맛과 가장 인접하거나 비슷한 맛은 어디일까. 매운맛이 우리 맛의 대표라고 한다면, 중국에서는 후난(湖南)의 매운맛이 우리의 매운맛에 가장 가깝고 우리 입맛에도 가장 잘 맞는 게 아닐까 한다.
후난성 대표 생선요리 둬자오위터우
후난, 중국의 호남은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이라는 말이다. 창장(長江)은 쓰촨(四川)과 충칭(重慶)을 거친 다음 동정호의 북쪽을 스치듯 동류해 장시(江西)와 안후이(安徽)를 흐르고 장쑤(江蘇)와 상하이(上海) 사이로 빠져 중국의 동해로 흘러들어간다. 행정구역으로 동정호의 북쪽은 호북 즉, 후베이성이고 동정호와 그 남쪽 지역이 후난성이다.
중국에서 음식의 지역적 분류에서는 후베이(湖北) 음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후난 음식이 후베이를 포괄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이제 후난의 음식 후난차이(湖南菜)로 들어가보자.
후난은 동정호로 흘러들어가는 샹장(湘江)을 따서 샹(湘)이란 글자로 간략하게 칭하기도 한다. 차량 번호판뿐 아니라 음식이나 음식점 간판에 이 한자가 이 있으면 후난식의 차나 음식이란 뜻이다. 후난차이의 대표적인 음식은 여럿 있지만 나는 둬자오위터우를 최고로 꼽는다. 우리가 조기 대가리에서 어두육미를 실감한다면 후난에서는 이 둬자오위터우에서 실감한다. 둬자오위터우는 다진 고추 둬자오를 생선 대가리 즉, 위터우에 듬뿍 얹어 찜으로 조리한 요리다. 주재료는 용어, 대두어 또는 반두어라고도 부르는 생선의 대가리고, 주된 양념이 바로 둬자오다.
둬자오는 녹색 고추를 다져서 숙성하면 연두색이 되고, 붉은 고추는 붉은색을 띤다. 수직으로 두 쪽으로 가른 생선 대가리에 두 가지 둬자오를 각각 얹으면 연두색과 붉은색의 조화도 멋지다. 이렇게 조리한 위터우는 원앙 둬자오위터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찜이라고 하지만 실제의 조리법은 열 가지도 넘는다. 중국의 볶음 요리는 주문하면 5~10분 정도면 식탁에 오르지만 이 생선 대가리 찜은 30분은 족히 걸린다.
입안에 착착 감기는 상큼한 매운맛은 다른 중국 음식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가리 사이사이 박혀 있는 흐물흐물한 살을 빨아먹는 것도 그렇고, 부레를 찾아 흡입하듯 먹는 식감도 그만이다. 뼈가 많은 쪽과 달리 아가미 뒤쪽에 붙여둔 두툼한 생선살에서는 오히려 고급진 맛이 난다.
대가리에서 뼈를 추스르며 고기를 먹은 다음에는 삶은 면을 육수에 담가 먹는다. 우리가 매운탕 국물에 밥을 볶아먹듯이 둬자오위터우는 면을 넣어 먹는 것이 정해진 코스다. 흰 쌀밥도 잘 어울린다. 둬자오위터우에 곁들여 먹는 밥은 일반적인 백반보다는 보판이 제격이다. 보판은 사기 밥공기에 쌀을 1인분씩 담아 한 그릇 한 그릇 통으로 쪄내는 밥이다. 약간 꼬들꼬들한 느낌에 찰진 기운이 감돈다. 밥 자체가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얼큰한 둬자오위터우 육수와 만나면 이것 역시 환상의 조합이다.
고급 음식점이 많은 후난차이
중국 음식기행을 연재하기로 결정한 지난 1월, 상하이에서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신 교수는 후난의 수도 창사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둬자오위터우의 현지 조리법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다녀온 출장길이었단다. 신 교수는 지난해 붉은 청양고추 25㎏을 칼로 밤새도록 다져서 장을 만들고 여러 생선을 가져다가 한국화한 둬자오위터우 조리법을 시험했다. 대두어를 대신하기에는 우럭이 가장 낫다고 한다. 신 교수의 둬자오위터우 시험에는 나도 시식꾼으로 참가해 귀한 한국산 둬자오위터우를 몇 번이나 맛보기도 했다.
이렇게 후난식 생선요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신 교수를 중국에서 만났으니, 후난이 아니라 상하이지만 둬자오위터우를 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상하이의 난징동로 인근 식당을 물색해서 중국에서도 고급 후난차이로 유명한 왕샹위안(望湘園)을 예약했다. 신 교수를 난징동로 입구에서 만나 둬자오위터우를 시식했다. 고급스럽게 조리된 둬자오위터우가 뚜껑 달린 큰 냄비에 담겨 식탁에 올라왔다. 기대한 대로 상큼한 매운맛 향기가 입안에 가득 찼다.
중국에서 둬자오위터우를 포함한 후난요리는 쓰촨차이처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요리는 아니다. 쓰촨차이는 저렴하고 대중적인 음식으로 전국 곳곳에 구석구석 퍼져 있다. 그러나 후난차이는 중상 이상의 고급 음식점이 많다. 예술적 이미지도 강하다.
음식 자체가 색이 선명하고 색의 조합도 강렬한 대비가 많다. 눈으로 봐도 감동이 느껴지는 음식이 많다. 베이징의 798예술구에서도 후난차이가 월등하게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대도시에서도 새로 개발된 도심에서 후난차이가 종종 눈에 띈다. 인테리어나 서비스 등도 꽤나 세련된 차림이기 때문이다.
내가 워낙 둬자오위터우 마니아인 탓에 후난차이에서도 한 가지 음식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게 됐지만 그 외에도 맛난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고 한 가지만 더한다면 줴건펀이라는 냉채다. 고사리를 가루로 내어 면발을 뽑은 다음 매운 양념을 해서 만든다. 줴건펀 역시 후난의 특색 있는 매운맛이 그만이다. 한국에 없는 고사리 면발을 맛보시라. 정말로 장자제 깊은 산골에서 채취한 고사리로 만든 귀한 음식을 만나는 느낌에 빠질 것이다.
마오쩌둥이 좋아하던 후난 음식 마오자차이
둬자오위터우는 후난차이 식당이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 쓰촨의 식당에서도 가끔 찾을 수는 있다. 후난차이 식당이라고 해도 주문이 늦으면 생선 대가리가 소진돼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후난에서는 어디나 후난차이가 널려 있지만 외지에서는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마오쩌둥이 후난 사람이고 그가 좋아하던 후난 음식을 마오자차이(毛家菜)라고도 한다. 식당 이름에서 마오(毛)가 있으면 이것도 대부분 후난차이다. 조악해 보이는 공산당 정치구호나 포스터를 이용해서 1960~1970년대 풍으로 장식한 식당이 있다면 그것은 마오쩌둥 시대로 분위기를 낸 후난차이 식당이다.
샹어칭과 왕샹위안 등은 고급 후난요리집이다. 샹어칭의 어는 후베이성(湖北省)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 식당은 호북 호남 출신 부부가 창업했는데 중국 대도시마다 한두 개씩 분점이 있는 전국적인 체인이다. 왕샹위안은 상하이 베이징 등에 분점이 많다. 상하이만 해도 스무 개 정도나 되니 쉽게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다.
후난요리를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후난음식점은 장난런민궁쓰(江南人民公司)라고 볼 수 있다. 런민궁쓰 역시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경제정책의 산물이었다. 정책으로는 실패했지만 중국인에게는 마오쩌둥을 추억하는 말로 남아 후난차이에 결합됐다. 식당을 몇 개 예시했지만 실제 여행에서는 간판에 샹(湘)이란 한자를 찾는 게 현실적이다. 샹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 보자. 그리고 외국인의 어설픈 발음도 귀 기울여 알아들을 테니 주저 말고 “둬자오위터우”를 외쳐보자.
윤태옥 여행작가 kimy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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