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헌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
1987년에 정부 주도 산업기술 연구개발(R&D)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대의 R&D 투자로 우리나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주력 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게 됐다. 미국의 7분의 1,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한 R&D 예산을 감안하면 고무적이다. 그러나 최근 성장 잠재력 하락과 기업의 투자 정체가 이어지면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벌어지고 후발국에는 쫓기는 ‘넛크래커’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경쟁국들은 이미 경제 침체와 일자리 문제를 산업정책 패러다임으로 인식하고 앞다퉈 산업 부흥전략과 R&D정책을 발표했다. 미국의 ‘산업 인터넷 컨소시엄(IIC)’ 운영과 일본의 ‘재흥전략 2016’, 독일의 ‘인더스트리4.0 지원’, 중국의 ‘인터넷+’까지 모두 정부가 앞장서 산업육성정책을 수립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우리도 이런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신산업 창출을 위해 산업기술 R&D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시장 창출형 R&D체계로 전환한다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5년 내 전기·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가전, 에너지신산업 등 5대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산업기술 R&D 예산의 50%(1조5800억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기획·평가 단계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개방형 R&D 활성화 및 연구자 중심의 프로세스 개선도 추진한다.
이번 정책이 성공하려면 구체적인 실행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 R&D 지원 전담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역할도 고도화해야 한다. 전략-사업-과제기획 연계를 통해 일관성을 확보하고, 업종 간 협업을 촉진하는 융합기획 체계로의 전환이 필수다. 전략산업별 목표에 대한 성과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개별 기술 중심의 나눠주기식 지원은 탈피해야 한다. 기술과 사업화 역량이 우수한 기업을 찾아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누구든 접근 가능한 R&D 지식통합플랫폼 구축을 통해 사업화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실행 과정에서 일부 혼란과 이해관계자 간 갈등도 예상된다. 그러나 산업기술 R&D의 환골탈태를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혁신이 신성장동력 창출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