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관세·디지털세… 동맹·적 경계 사라진 '프레너미 시대'

입력 2018-03-21 19:59
신 경제패권 시대…스트롱맨의 전쟁
WTO 무역체제 최대 위기

트럼프, 중국 견제한다며
수입철강에 고율 관세 부과
한국·EU 등 전통 우방에 더 타격

미국 법인세율 대폭 낮추자
EU "애플 등에 디지털세 부과"
글로벌 세금전쟁도 촉발


[ 추가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 무역질서를 허물고 있다.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무역적자를 줄이려고 수입을 억제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세계가 ‘통상전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은 물론 유럽, 한국 등 전통 우방(友邦)국에서 수입하는 철강에도 높은 관세를 매기고, 유럽연합(EU)은 구글 애플과 같은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을 겨냥해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으로 결성된 자유무역 체제에서 무역 상대국은 곧 외교적 동맹을 의미했다. 트럼프발(發) 통상전쟁에선 그런 동맹국과 적국의 경계가 사라졌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무역체제에 최대 위기가 닥쳤다”고 지적했다.

이중적으로 동맹 대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은 ‘국가안보’였다. 철강, 반도체 등의 자국 산업 보호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의 이런 ‘통상안보’ 전략은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는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언급한 내용이 이를 대변했다. 그는 미국의 일방적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따른 통상전쟁 우려에 대해 “미국 시장과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무역전쟁에 들어간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려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무역체제와 규범을 해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관세를 면제해주는 대가로 외교·군사적 동맹국들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통상전쟁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기술 유출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싱가포르계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자국 통신칩 제조업체 퀄컴 인수 시도를 막았다.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 뒤 비용 절감을 이유로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퀄컴은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기술 구현의 핵심 기술인 5세대(5G) 이동통신 관련 특허권을 다수 보유해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최대 경쟁자로 꼽힌다. 퀄컴이 기술 개발 주도권을 빼앗기면 화웨이가 5G 표준을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데이터 탈취 등 사이버 보안 문제 발생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미 정보기관 수장들은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국민은 화웨이와 ZTE 같은 중국 업체의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는 이동통신사 AT&T의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도 막았다.

흔들리는 대서양동맹

미국은 올초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낮추면서 글로벌 ‘세금전쟁’도 촉발시켰다. 세금을 인하해 다른 나라에서 기업을 빼앗아오겠다는 전쟁이다. 대상국엔 동맹과 적이 따로 없다.

미국과 EU는 미국의 IT 대기업에 대한 세금 부과를 놓고 충돌하고 있다. EU는 미 IT 대기업이 유럽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면서 이익이 아니라 매출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플랫폼 서비스는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때문에 승자독식 구조가 형성된다.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애플이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음원이나 영상 플랫폼도 지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EU는 자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보호를 명분으로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IT 대기업이 유럽에서 올린 디지털광고 수익, 서비스 구독료 등 매출에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