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54년간 의료봉사, 의사로서 할 일 했을 뿐… 힘든 적 없어"

입력 2018-03-20 17:11
보령의료봉사 대상 받은 김임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의대 시절 의료봉사 시작
국내외 무의촌 진료 헌신

매년 3천만원씩 10년간
어려운 가정에 장학금도 지급


[ 임유 기자 ]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74년을 살면서 의사로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제34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임 김임신경정신과의원 원장(74·사진)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보령의료봉사상은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인술을 펼친 의료인과 의료단체를 기리기 위해 1985년 보령제약과 대한의사협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상으로 매년 시상한다.

김 원장은 1964년부터 지금까지 54년 동안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의 삶이 곧 한국 의료봉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는 1964년 전남대 의대 재학 중 의료봉사를 처음 시작했다. 선배 권유로 의대·간호대 연합 의료봉사 동아리에 가입했다. 가난하던 시절이어서 의사가 없는 동네가 많았다. 방학 때마다 무의촌에 가서 의사를 보조했다. 그는 “진료실 뒤에서 환자 대변을 수집해 현미경으로 기생충 알을 검사하고 의사가 지시하면 환자를 문진해 관련 자료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김 원장은 도울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갔다. 초기에는 기생충 박멸 사업, 레크리에이션 보급, 화장실 개량, 손씻기 운동 등 위생과 감염 예방에 집중했다. 1972년부터 2016년까지 45년 동안 봉사단체인 장미회에서 뇌전증 환자를 무료로 진료했다. 1985년 이후에는 성폭력 피해자, 학교폭력 피해자, 가정폭력 피해자 등을 상담하며 당사자와 가족의 정신건강 치료를 위해 힘썼다. YMCA, 경찰, 생명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등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전국에 보건소가 들어서면서 무의촌 진료 수요가 줄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김 원장은 1995년부터 해외의료봉사단, 종교단체, 의사단체 등을 통해 러시아 태국 캄보디아 몽골 필리핀 등을 다녀왔다. 의료 접근성이 낙후한 해외 곳곳에서 기생충 박멸, 화장실 개량, 우물 파기, 위생 교육 등 감염 예방 사업과 선진의료 전파에 기여했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일도 꾸준히 해왔다. 김 원장은 전북의 한 대학교에 10년 동안 매년 3000만원씩 총 3억원을 후원했다. 김 원장의 할아버지는 광복장을 수상한 독립운동가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했다. 학창 시절 가정교사로 돈을 벌면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이 나의 큰 스승이었다”며 “가난한 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김 원장은 오랜 기간 봉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의사 13만여 명 가운데 30~40%는 나처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료봉사는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증진해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국가에 보탬이 된다”고 강조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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