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우, 영화 '사라진 밤'·MBC '데릴사위 오작두' 연속으로 선봬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남편, 아빠, 아들…삶의 조화 꿈꿔"
우리는 한 번쯤 나 아닌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배우들은 작품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삶을 산다. 하지만 연기자의 길은 쉽지 않다. 스포츠 못지않은 경쟁률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다.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연기도 해야 한다. 김강우는 그래서 먼 훗날 아이가 연기한다면 절대 반대할 거라고 말했다.
배우 김강우에게 '사라진 밤'이 그랬다. 절대로 선택하면 안 되는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재벌가 회장 아내의 소품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륜하고 결국 아내 윤설희(김희애)를 살해할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인물인 박진한이라는 악역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호감의 대명사가 될 수 있는 캐릭터"라며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함께 출연한 배우 김상경은 이 작품을 김강우의 '인생작' 중 하나로 꼽았다. 선과 악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면서 관객이 진한의 감정선을 따라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아직 인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인생작은 안 온 것 같아요. 제대로 연기를 한 건지 아닌지 의구심을 가졌던 작품이죠. 사실 저에 대한 평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캐릭터를 보고 고른 영화가 아니라 얼개를 보고 들어간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밤'에서 김강우는 아내의 시체를 빼돌린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에게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베테랑 형사 우중식(김상경)과 국립과학연구소 시체 보관실에서의 하룻밤을 그린다. 극에서 김강우와 김상경 두 사람은 테이블 하나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며 실제인지 연기인지 모를 만큼 날 선 공방을 펼친다.
"같은 공간에서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어서 힘들었습니다. 20일 동안 촬영하면서 '같은 날' 이루어 진 것 처럼 보여야 했죠.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수척하고 피폐해지는 진한의 모습이 나와야 하니까요. 평소 연기에 예민한 부분도 있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계산을 많이 하고 연기한 작품입니다."
김상경과의 감정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그는 촬영하는 내내 혼자 지냈다. 가장 어려웠던 취조 장면도 '좋은 배우'(=김상경)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아내 역을 연기한 김희애에 대한 믿음도 단단했다.
"설정 자체가 연상 연하 커플이었어요. 현실에서 나이 차이(11살차)가 난다고 해서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김희애 선배는 여배우들만의 예민함도 전혀 없습니다. 멜로를 하고 싶었는데 많은 장면을 촬영하지 못해 아쉬워요. 일, 가정 모두 완벽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죠. 슛 들어갔을 때 평소의 모습을 지우고 다른 느낌을 가지고 나오십니다. 자기 관리의 최고봉이죠."
김강우는 영화에서 아내를 계획 살인하고도 자신의 죽인 아내로부터 협박을 받으며 무너지는 모습을 선보인다. 악역이지만 연민이 가는,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연민을 끌어낼 수 있을까. 그것이 제 숙제였습니다. 이창희 감독이 지문을 안 쓰는 스타일이라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불안 요소가 많았죠. 저는 진한의 전사를 찍고 관객의 이해를 돕자는 의견이었는데 '아니다'라고 하셨어요.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놀랐어요. 감독 머릿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었더군요. 시나리오보다 훨씬 재밌게 나온 것 같아요."
이창희 감독에게 '사라진 밤'은 연출을 맡은 첫 상업영화다. 처녀작에 김강우, 김희애, 김상경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출연했다. 배우들 입장에선 연출력을 확인하지 못하고 배팅을 한 셈이다. 김강우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단편 영화를 하나 보내줬다"라며 "그걸 보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가 연출력이 돋보이거나 배우의 엄청난 무언가가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영화인데 깔끔하게 끝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전체적인 흐름과 콘티가 머릿속에 있었다는 거죠. 신인 감독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강우는 영화뿐만 아니라 MBC 주말 드라마 '데릴남편 오작두'를 통해 안방극장도 공략 중이다. '사라진 밤'과는 180도 반대의 해맑고 낙천적인 긍정남 캐릭터다. "타이밍이 우연히 이렇게 됐네요. 왜 '데릴남편 오작두'를 선택했냐고 묻기도 해요. 오작두는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캐릭터일 수 있다는 생각에 출연하게 됐어요. 멋있고, 가진 것 많은 캐릭터도 있지만 오작두는 희소성이 있죠. 이런 작품은 지금껏 못 봤어요."
배우는 작품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김강우의 신념이다. "예체능에서 특히 배우는 제일 게으른 것 같아요. 그림, 음악, 운동 분야는 매일 작업을 하거나 연습을 하죠. 배우는 사실 그렇지 않아요. 작품을 해야 연기를 하지 혼자서 연습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죠. 그래서 좋은 배우들과 연기하는 것이 연기력 향상에 도움 되는 것 같아요."
김강우는 2001년 단막극으로 데뷔한 이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1년에 한두 작품씩 꾸준히 출연해 왔다. "배우도 직업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5년 했으면 지겨울 때도 있죠. 최근 연극 '햄릿'을 했는데 대학교 때 했던 작품이라 그런지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꼈어요. '이렇게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하고 난 후 참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매번 작품에 따라 날 선 평가를 받아야 하고, 다른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선 '선택'을 받아야 한다. 보통 정신력이 아니라면 쉽게 지쳐버릴 만도 하다. "그런 것에 지면 끝나요. 하루 이틀 할 일이 아닌데 말이죠. 1년에 한 작품을 한다면 10년이 되면 열 작품을 했겠죠. 그때 또 나를 보듬고, 가고,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40대가 되어서 여유가 생겼죠. 나쁜 것은 피로회복이 좀 늦네요."
김강우는 사람이 살면서 한 직업을 가지고 10년 이상 하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라고 했다. "어떤 직업이든 반 장인이 된거죠. 20년이 넘어가면 조금 더 행복할 테고, 그러면서 소중함이 생기는 것 같아요. 꼴 보기 싫게 미웠다가, 다시 소중해지고. 그런 과정을 수없이 겪고 나니 없으면 안 되는 느낌이 들어요. '애증'인 것 같아요. 하하"
배우라는 직업의 가장 좋은 점은 '정년'이 없다는 거다. 김강우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연기를 하는 것이 목표다. "저는 배우이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이며, 그런 직업을 가진 남편이자 아빠, 아들입니다. 제 삶은 모토는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로웠으면 해요. 직업만 잘 된다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등바등 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다 보면 소위 '대박' 작품도 오지 않을까요? 요즘은 매일 이런 생각을 합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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